단편소설
②퍼스트 제너레이션

  • 단편소설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②퍼스트 제너레이션

내겐 낡은 아이팟이 있다. 그것은 2001년에 만들어졌고 딸깍거리는 네 개의 버튼과 클릭휠이 달려 있다. 이젠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지만 그것은 여전히 멋지다. 당시 제품을 소개하는 공식 홈페이지는 이런 카피로 시작되었다.

“1000 Songs in Your Pocket,”  

 

아이팟을 샀던 건 2002년 2월 엘릭스 컴퓨터 종로 매장에서였다. 아이팟은 지미 헨드릭스의 흑백사진이 프린트된 멋진 띠 포장지를 한 채 매장 가운데 탑처럼 쌓여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가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스트라토캐스터를 쥔 채 허공을 향해 왼팔을 뻗은 그 흑백사진 옆에는 그저 ‘ipod’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자제품 박스라면 응당 필름 인쇄가 된 재생지 박스에 온갖 지원 파일과 성능이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여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미 헨드릭스라니.

띠 포장지를 벗겨 내자 은색의 큐브 형태의 상자가 나왔고 상자의 가장 위에는 검게 칠해진 애플 마크가 있었다. 상자는 다시 반으로 쪼개지며 날개가 펼쳐지듯 열렸다. 왼편에는 흰색의 이어폰과 충전기가, 오른편에는 투명한 우윳빛의 아이팟이 있었다. 그것은 mp3 플레이어라기보다는 차라리 외계인이 놓고 간 우주선의 부품처럼 보였다. 매장 주인아저씨는 감탄했다.

“애플 놈들, 진짜 포장을 할 줄 안다니까.”

매장에서 열어보는 사람은 없어서 아이팟 실물은 처음 본다는 주인아저씨는 나보다 감격해 있었다. 그는 포장을 풀었던 손을 어쩌지 못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거, 내가 처음 만지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주저하는 아저씨 대신 조심스럽게 우윳빛 기계를 꺼냈다. 아이팟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아이팟에 씌워져 있는 비닐을 벗겼다.

“근데 매킨토시가 있어야 음악 들을 수 있는 건데. 알고 사는 건가?”

거울 같은 스테인리스 뒤판에 내 얼굴을 비춰보는 사이 주인아저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밖에. 당시 우리나라 매킨토시 대부분은 인쇄소에서 조판을 위한 식자 작업에 쓰이고 있었고 나머지도 녹음실과 편집실의 장비 정도일 뿐이었으니까.

  

“대한민국 인쇄소와 편집실, 녹음실을 더하고 1.2를 곱하면 한국에 존재하는 매킨토시 수가 나올걸요.”

그는 내게 작업실 컴퓨터를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역시 작업용으로 맥을 쓰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 가려면 동부이촌동의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언덕을 넘어야 했다. 가파른 비탈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전신주와 건물 사이로 딱 한 뼘만큼 한강이 보였다. 우리는 그날 베란다에 서서 머리를 맞댄 채 한강을 바라보았다. 붉은 빌라의 벽돌과 전신주 사이로 보이는 희끄무레한 회청색의 강은 가을 오후의 빛을 받아 번쩍였다.

“봐요. 정말 한강이 보이죠.”

그것은 강보다 차라리 바람에 날리는 비닐 조각 같았다. 그럼에도 어쨌든 빛나고 있었다.

“네. 예뻐요.”

내 답에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런 나름 한강 조망 빌라의 거실을 차지하고 있던 건 아비드라는 기계였다. 온갖 전선이 달려 있는 캐비닛과 조그셔틀이 달린 패널, 두 개의 소니 21인치 브라운관 모니터가 있는 큼지막한 테이블로 되어 있는 그 기계의 가운데에는 매킨토시가 있었다. 전원을 켜자 딩~ 하고 부팅음이 울리며 웃는 맥 아이콘이 떴다. 뒤이어 mac os 9이라고 쓰인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것을 그는 자신의 밥줄이라 소개했다.

“와, 신기하다. 이걸로 그 TV에 나오는 그 광고들을 다 만드는 거예요?”

“아니요. 편집만 하는 거죠. 자르고 붙이고.”

그는 자신의 일이 별게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요. 어쨌든 TV에 나오잖아요.”

“그냥 평범한 일이에요.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위질해서 종이를 붙이는 거나 마찬가지죠.시간으로 긴 띠를 만드는 거라고 할까? 평범한 일입니다.”

TV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일까? 그는 평범함을 강조했다. 그 평범함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평범할 수 있다는 건…… 나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삼켰다. 

 

“잘 써요. 아가씨.”

주인아저씨는 출입문을 열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들여오고 처음 포장을 열어본다면서 싱글벙글하던 그는 내게 몇 번이나 아이팟의 사용법을 꼼꼼히 다시 반복해 설명했다. 윈도우에서 쓸 수 없다거나 사용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다시 찾아와 반품을 해달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이팟을 들고 나오며 궁금했다. 지금 서울 하늘 아래 맥이 없는 아이팟 사용자가 많을까 아니면 트랜스젠더의 수가 더 많을까.

내게는 아이팟을 위한 맥이 없다. 나는 그저 한낮 서비스업 종사자였고 컴퓨터라면 전원 켜는 법과 싸이월드, 다음 카페를 들어가는 정도만 할 줄 알았다. 심지어 그를 만나기 전에는 컴퓨터엔 윈도우가 있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세상에는 윈도우 외에도 다른 걸 쓰는 컴퓨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그래서, 매킨토시 밖에 연결되지 않는 첫 세대 아이팟을 산 것이다.


“믿어져요? 백 편이 넘게 편집했는데, 단 한 번도 진짜 연예인을 본 적 없다는 게.”

그는 광고 회사 피디라는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피디는 팁을 찔러주며 그를 향해 눈짓했다. 좀 챙겨달라는 신호였다.

“그래서 얘가 이렇게 시무룩했구나.”

나는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 가슴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딱히 의미가 있던 건 아니었다. 쇼가 끝나고 테이블에 가 인사를 할 때, 팁을 벌기 위해 하는 일종의 서비스였다. 대부분의 남자라면 이제 황금색 술이 달린 비키니 브래지어에 팁을 꽂아줬고, 액수가 만족스럽다면 엉덩이를 한 번 더 흔들어 준 후 일어나면 됐다.

그런데 그는 귓불까지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내 시선을 피했다. 빨개진 귓바퀴를 따라 거미줄 같은 실핏줄이 선명했다. 그 핏줄들이 귀여워 귓가에 후 하고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다. 바람이 닿자 움찔하고 몸을 움츠렸다. 귀로 시작한 홍조는 뺨까지 번졌다. 엉덩이 아래로 딱딱하게 경직된 그의 허벅지 근육이 느껴졌다.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이 내 몸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있었다. 뼈밖에 없는 마른 다리로.

그 절박함이 귀여웠다. 그리고 슬펐다.

아, 이런 사소한 것에 반하기도 하는구나.

물론 지나갈 감정이었다. 당시 나는 그렇게 쉽게 첫눈에 반하고, 이내 식어버리곤 했으니까. 아주 작은 사소한 것에 한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매혹됐다가, 망상을 부풀리고, 열정에 불타올랐다. 그런 일방적인 열정은 빠른 시작만큼이나 이른 파국을 맞이했다. 망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는 순간 멋대로 실망한 후, 돌아서면 곧장 잊었다. 당시에는 이 모든 게 불같은 내 성정 탓이라 생각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일종의 자기방어가 아니었을까. 가질 수 없는 것을 내 변덕 때문이라 믿으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저 외로웠을 뿐이다. 누군가를 진득하게 만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으므로.

 

“순진해 보이던데 너무 잡아먹진 말고.”

마담 언니가 등을 밀었다.

클럽 앞 주차장에서 바닥을 보며 서있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애처롭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라기보다는 버려진 강아지나 길을 잃은 소년처럼 보였다. 나를 기다리며 텅 비어가는 주차장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성냥 같은 팔을 앞주머니에 꽂고는 보도블록의 끝을 의미 없이 신발코로 문지르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그가 내 모습을 보자 놀라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마르고 가는 팔다리는 자칫 부러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나를 기다리는 남자들은 종종 있었다. 그런 부류들은 정해져 있었다. 자의식 과잉의 미친놈이나 날 꼬시는 걸 놓고 내기를 건 꾼들, 넣을 수 있다면 콘센트 구멍에라도 쑤셔댈 것 같은 발정 난 수캐, 혹은 병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스토커 정도가 주차장에서 날 기다리는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무리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동료들과 나오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다시 나를 바라볼 때까지.

당신은 어떤 사람이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더 그의 귀가 신호등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마담 언니가 등을 밀었다. 자신이 보기엔 괜찮으니 가보란 의미였다. 등 뒤에서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린 잘 것이며 그는 떠날 것이다. 괜찮았다.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관계란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니까. 그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웃는 것이다. 조금은 부러워하며, 그보다 약간 더 슬퍼하며. 어쩌면 이번엔 다를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다들 나만큼이나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원하는 나와 일치하는 삶. 그 희망이 우리를 이곳까지 모이게 한 거였으니까.

 

우리는 길 건너편에 있는 이자카야에 앉아 새벽 네 시까지 술을 마셨다. 남자들은 다들 비슷했다. 술기운이 없이는 용기도 없었다. 야근을 하는 광고 회사 직원들이 아침까지 몰려오는 곳이었으므로 우리는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았다. 넥타이를 반쯤 푼 취한 사내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이자카야의 불빛 아래서 본 그의 모습은 더욱더 소년 같았다. 물론 이마에 주름이 있었고, 미소 지을 때 눈가에 잔주름이 생겼지만 술잔을 따를 때마다 어쩔 줄 모르는 손과 내 눈과 머리 뒤 천장 어딘가를 오고 가는 시선은 숙제를 두고 온 남학생 같았다. 애틋함과 애정 사이의 어딘가에서 마음이 파르르 떨렸다.

“왜 날 기다린 거예요?”

“저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제가 그러니까……”

말을 더듬는 그를 위해 잔을 들었다. 그래. 이유가 중요할까. 어차피 하룻밤일 뿐인데. 오금에 힘이 빠지고 균형 감각이 흐트러질 때까지, 딱 그만큼 우리는 건배를 하고 또 했다.

 

“사시는 동네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는 택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기사에게 말했다.

“프린스 호텔 앞이요.”

그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뒷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어쩔 줄 모르는 그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은 땀이 고여 축축했다. 손가락 사이에 얽혀 오는 이 미숙함이, 이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너무나 어설픈 나머지 나까지 두근거렸다.

 

“절대로 싼 모텔은 가지 마. 그럼 위험하니까.”

“돈 없는 사람들이 위험한 거예요?”

“아니. 미친놈들이야 똑같지. 돈이 있건 없건.”

“근데요?”

“최소한 호텔은 로비랑 엘리베이터에 CCTV가 있거든. 미친놈들도 그건 알고.”

마담 언니의 조언은 우리 사이에서 절대적이었다. 그녀는 이 클럽도, 다음 카페도 없던 시절에 혼자 자신의 삶을 결정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가쁜 숨을 헐떡이며 그가 옆으로 쓰러졌다.

“처음이었어요.”

“그래요.”

다들 같았다. 처음 트랜스젠더 클럽에 왔을 것이고, 처음 트랜스젠더들의 누드쇼를 봤을 것이다. 처음 질 재건 수술로 만든 성기를 보았을 것이고, 처음 트랜스젠더와 자봤을 것이다. 나에게는 일상이지만, 그들에게는 모두 처음인 일.

 

 

가족 중 이제 유일하게 연락하는 오빠가 된 형은 이런 내 삶의 방식을 놓고 창녀와 다를 바 없다 욕했지만 나 역시 원해서 택한 삶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막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던 무렵 나는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학교에선 제과제빵을 전공했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주민등록번호를 묻지 않던 재래시장의 작은 빵집뿐이었다. 그 빵집에서 제빵 일을 하던 남자아이가 날 쫓아다녔었다. 호르몬 치료는 꽤 성공적이었으므로 겉보기에는 목소리가 저음인 중성적인 여자아이 정도로 보였으리라. 남자의 성화에 못 이겨 키스를 했고, 뒤이어 내 몸을 강제로 더듬었으며, 욕설을 들었다. 그리고 끝내 안와 골절을 당할 정도로 얼굴을 맞았다. 남자는 쓰러진 내게 침을 뱉었다.

“남자의 순정을 이용하니까 재밌냐.”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그의 순정을 원했던 적도 없고 속인 적도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순정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묻지 않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착각의 대가는 컸다. 아르바이트에선 잘렸으며 그때까지 시장에서 어렵게 쌓았던 인간관계는 모두 무너졌다. 태국에 가 수술을 받기 위해 넣어 두었던 적금 역시 치료비로 써야 했다. 어쩌면 죽음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에 다음 카페를 통해 클럽을 알게 됐다.

 

클럽은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쇼를 하는 곳이었다. 쇼는 원본이었던 태국의 것을 모방한 만큼 노골적으로 성적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커스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러 오는 것은 성적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기묘한 구경거리에 가까웠다. 술 취한 사람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노골적으로 고추를 뗐냐 안 뗐냐 따위를 물어보곤 하며 직접 만져 보려 했다. 처음엔 그들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지만, 왜 애써 이곳까지 술을 마시러 오는지 깨닫게 되자 이내 동정하게 됐다. 이곳은 안도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그래도 저들보다는 내가 낫다는 위안을, 자신의 정상성을 확인 받기 위해 오는 곳이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왔고, 커플이 함께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취하고 취해서 추하고 추한 꼴을 보이곤 했다. 추행 정도는 오히려 사소했다. 남자 목소리를 내달라거나 자신의 애인과 키스해보라는 인간도 있었다. 술 취한 그들을 말리는 우리들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했다. 핏대를 올리며 ‘니들이 감히!’ 따위를 외쳤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돈만 준다면. 그 돈으로 내 것이 아닌, 원래 그랬어야 하는 몸으로 바꿀 수 있었으니까. 마담 언니는 그런 진상들을 보내고 나면 탄식하듯 말했다.

“부조리하지 않니? 우리가 저 정상 진상들한테 그래도 위로가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쇼에 나가게 되면서 생활도 안정되었고 만나는 남자관계도 깔끔해졌다. 무엇보다 안전했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지낼 수 있게 됐다.

2년만 더. 3년 적금 만기까지.

다들 생각이 같았다. 받아야 할 치료와 수술은 많았다. 어차피 정상적인 직업을 얻을 길도 없었지만, 수술 후 정상적인 직장을 얻지 못했으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을 수련하듯 끝마치고 나면 과거를 지울 돈이 필요했다.

어딘가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누구나 그런 희망 하나쯤은 있었다. 그게 개소리라는 건 연애 한 번만 하면 누구나 알게 된다. 물론 좋을 때는 그런 척할 수 있다. 하지만 싸움이 심각해지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진짜 여자도 아닌 주제에”였다.

그러니 이곳 밖에 없었다. 희망 하나를 위해 많은 걸 버려야 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면 언젠가 모든 과거를 지울 수 있으니까.

 

“진짜 처음이었다고요.”

돌아누워 담배에 불을 붙이는 내 등에 대고 그는 말을 이었다.

“여자랑…… 아니 누구랑 자본 게.”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로 결정한 그 순간, 마법의 단어는 ‘여자’ 쪽이었을까, ‘누구’ 쪽이었을까. 아니면 그 뒤 찾아온 짧은 침묵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침묵 뒤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찬 입안으로 밀랍처럼 들어오는 서투른 혀가 했던 키스 때문이었을까.

집에 오자 생각이 많아졌다. 잘 들어갔냐는 살뜰한 문자는 반갑고 설렜다. 쉽게 남자를 만날 수 있었지만 다들 등을 돌리면 떠났으니까. 때문에 설렘은 고통을 동반했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의무감으로 몇 번 더 나를 만날 것이고, 그러다 식어 버릴 거라고. 식거나 변치 않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를 둘러싼 나를 둘러싼 것들이 서서히 내게서 그를 앗아 갈 것이니까. 결말이 뻔히 정해진 고통을 향해 나는 한 자 한 자 자판을 눌러 답 문자를 보냈다.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덧붙여서.


작업실 문 앞에 서서 그는 내 얼굴과 아이팟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작업용이라 음악 파일이 CM송밖에 없는데.”

한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던 그가 떠올랐다.

“괜찮아. 음악 파일들, CD로 구워 왔으니까.”

들릴 듯 말 듯 하게 희미한 한숨을 쉬며 그는 돌아섰다.

“커피 줄까?”

“응.”

주방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등을 보며 울컥, 무언가가 안에서 치받았다. 돌아선 그의 옷자락을 잡고 되묻고 싶었다. 정말 그게 다냐고. 내게 할 말이 그것뿐이냐고. 하지만 이제 내게 더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새벽 두 시에 갑자기 그가 보고 싶다 부른 밤이 있었다. 늦가을 밤, 그는 반팔 티 위에 낡은 패딩을 걸치고 운동복 바지로 슬리퍼만 신고서 집 앞으로 찾아왔다. 슬리퍼 안의 구멍 난 양말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

“왜?”

“그냥. 갑자기 보고 싶었어.”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혼자 있으면 불안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움켜잡았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때마다 나는 증명을 요구했다. 그것은 새벽 두 시에 갑자기 부르는 것처럼 비교적 간단한 일부터, 명절에 그의 집에 가 어른들에게 인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까지,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몰랐다. 순간순간 어떤 충동에 사로잡혀 그것들을 그의 앞에 들이밀고는 했으니까. 그때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 했다.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를 꺼내거나, 새벽 두 시에 하던 일을 내버려 두고 낡은 경차를 몰아 집에 찾아오는 것처럼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지켜주려 했으며 자신의 사랑을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그 증명이 내 불안을 조금도 줄여주지 못했다. 우리의 끝은 정해져 있었고, ‘이번’에는 운 좋게 그 파멸을 피했을 뿐이니까. 그래서 명절에 함께 집에 가자는, 그로서는 어렵게 내렸을 결단에 나는 ‘나중에’라고 짧게 답했다. 답을 듣는 그의 표정에서 안도가 있는 건 아닌지 매서운 눈초리로 살피면서. 두려웠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었고,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가족이나 세상과 맞설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음악 좋아하는지 몰랐네.”

파이어와이어를 타고 넘어가는 노래들의 제목을 보며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게.”

내 취향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다. 함께 노래방에 가면 ‘쿨’이나 ‘채정안’, ‘핑클’의 노래를 불렀다. 남들처럼 TV에 나오는 가수를 좋아했고,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날에는 <내 남자친구에게>나 에코의 <행복한 나를> 따위를 불렀다.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노래나 미니홈피를 장식하기 위해 도토리를 주고 사는 정도가 내 음악 취향의 전부였다.

 

 

5기가.

혹은 천 곡.

당시 첫 세대 아이팟에는 음악 파일을 구워 만든 시디를 여덟 장 넣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정도의 음악이 없었으므로 한복을 벗으며 아리랑 가락에 부채춤을 추는 언니에게 파일을 부탁했다. 노래방에 가면 한 시간씩 이별 노래만 부르는 지독한 이별 노래 성애자인 그녀는 천 곡의 이별 노래들을 시디로 구워주었다. 그 안에는 온갖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다양한 이별의 이유와 사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노래 속에서도 정말 우리 이야기 같은 노래는 단 한 곡도 없었다.

 

그날도 나는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CF 감독과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 그에게 지금 보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 또 다른 증명을 요구했다. 그는 저녁 늦게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문자를 확인했고, 내가 연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퇴근과 함께 집 앞까지 달려왔다. 그날 서울은 그해 최저 기온을 기록했고,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난방을 틀어도 문틈으로 무섭게 밀려오는 외풍을 목덜미로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이중 렌즈 사이 결로가 맺혀 잘 보이지 않는 현관문의 외시경으로 떨리는 그의 어깨를 볼 수 있었다.

목도리라도 좀 하고 오지.

그럼에도 그 떨리는 어깨조차도 이 분노를 어쩌지는 못했다. 그의 설명처럼 일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절망감, 분노, 소외감, 고통 역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면도날 끝에 서서 피투성이가 된 채 불타오르고 있는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 끝내.”

열린 문으로 그가 서 있었을 냉기가 훅 밀려왔다. 그 냉기만큼이나 차가운 내 목소리에 스스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채 뭐라 답하기도 전에 문을 닫았다. 몸 전체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문을 잠갔다. 그의 답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가 받아들이면 찾아올 끝이 무서웠고, 그가 매달리면 계속될 이 무간지옥이 끔찍했다

아, 아, 제발 누가 좀 끝내줬으면.

나는 문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밖에 있을 그를 위해 울었고,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는 나 자신을 위해 울었다.

“미친년이. 지랄하고 쳐 자빠졌네.”

마담 언니는 내 고민을 듣다 이렇게 운을 뗐다.

“복에 겨워 아주 지랄 염병이구나. 니가.”

“그치만……”

“그치만이고 저치만이고 헤어져. 이년아.”

“네?”

“니 스스로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거 안 끝난다. 걔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니가 끝내.”

“어째서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니까.”

“네?”

되묻는 목소리의 끝이 쓰라렸다.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인정하기엔 너무 아프니까.

“니가 니 자신을 못 받아들여서 끝을 정해놓고 난장 치는 거 아니냐고?”

피하고 싶었던 그 진실이 눈앞에 던져지자 덜컹, 마음이 내려앉았다. 나는 내가 그를 시험한다고, 그의 마음을 확인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은 내가 나를,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여성으로 만들어진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 불안과 분노를 그에게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날 사랑한다 했으므로 사랑하는 이에게 그래도 된다고 믿으며. 영악하게도.

“제가 생각을 바꾸면요? 제가 변하면……”

“바뀔지도 모르지. 그래도 변하지 않을 거야. 관계는.”

“왜요?”

“니가 그래도 되는 관계로 만들었으니까.”

마담 언니는 한숨을 쉬었다.

“관계란 사람 사이의 역학이야. 거기엔 관성이 있어서 일단 작용된 힘의 방향은 바뀌지 않아. 웬만한 노력으로는.”

아아. 그랬다. 언제부턴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쉽게 말했다.

‘우리 헤어져.’

그때마다 그는 내게 매달렸다. 알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까, 자신의 주변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건 하려 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트랜스젠더인 나와의 결별을 차마 응낙하지 못할 터였다. 어떤 이별도 결국은 내가 스스로 정체성을 자책할 테고, 그는 그 자책을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할 테니까. 그 마음을 나는 무기처럼 활용했다. 그것을 갈고리 삼아 아래로, 아래로, 우리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당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내 불행을 보라고. 사랑한다면 이 불행의 짐을 당신도 지라고.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그는 그의 손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또 다른 시험을, 나락을 만들어 우리를 괴롭혔다.

“노력하면 되잖아요.”

“너는 그렇다고 치고, 그걸 원할까? 그 사람도?”

돌이켜 보면 나를 몰아붙였던 것은 정해진 그의 변화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세상도 아니었다. 우리의 끝에 정해진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 확신하던 내 안의 테이레시아스 덕분이었다. 예언자들에게는 늘 예언 자체가 형벌이다.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닦아도, 닦아도 눈가가 자꾸 흐려졌다. 마음에 핏방울처럼 맺혔던 것들이 몸 안쪽의 밸브가 고장 나 버린 것처럼 울컥 쏟아져 내렸다. 마담 언니는 그런 내게 낮게 속삭였다.

“괜찮아. 나도 그랬는걸. 처음엔 그럴 수 있어. 너도 걔도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러니까 보내 줘. 이번엔.”


딸깍, 딸깍 마우스의 클릭음이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화면 속의 타임 라인은 조금 앞당겨지거나 뒤로 밀렸다. 그래서 이 시간과 저 시간의 시작과 끝이 변했다. 두 시간의 끝과 시작이 매끄럽게 만날 때까지. 모니터 속의 엔드 타임과 스타트 타임은 프레임 별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모포를 뒤집어쓴 채 뒤에 쪼그려 앉아 그가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붉게 달아오른 가스히터의 빛으로 그의 등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일에 집중한 그는 미간이 찌푸려 있었고, 그 주름은 콧날까지 이어졌다. 내가 사랑한 그의 표정이었다. 일을 하는 그의 등은 너무나 굽고 가냘픈 나머지 뒤에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딸깍 딸깍, 클릭음이 끝났을 때, 모니터 속의 주인공의 동작이 다시 멈췄다.

“배고프지 않아?”

“괜찮아.”

“심심하지?”

“아니.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뭐 하는데?”

“그냥…… 멍 때리고 있어.”

“빨리 끝내고 함께 밥 먹자.”

“응.”

저 기계가 하는 일처럼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 관계는 달라질 수 있을까? 연애에도 아비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장 멋진 순간들을 모아 하이라이트를 만들 수도 있고, 좋아하는 시간들만을 모아 수천 번, 수만 번 끊임없이 되돌릴 수 있을 테니까.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비선형적이라면 나는 이별을 가장 첫 장면에 배치하고 싶다. 그러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생각했던 내 믿음도 반전될 수 있을 테니까. 이별로 시작해 만남으로 끝나는 관계라니.

컷과 컷을 자르고, 그 아래 트랙을 깔고, 매끄럽게 이펙트를 넣는 그의 뒤에서 나는 소리 죽여 눈물을 닦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능했을지 모를 내가 망쳐버린 것을 생각하면서.


그는 매킨토시에 아이팟을 연결해 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끼릭 끼릭, 귀 기울여야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로 하드디스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베란다로 초봄의 아직 나약한 햇살이 빗금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타준 커피만이 한 뼘 크기의 비닐 같은 한강이 보이는 거실에 남아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부재의 의미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매킨토시에만 연결할 수 있는 첫 세대 아이팟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번 더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된장을 풀고 호박을 숭숭 썰어 찌개를 끓였다, 그는 베란다에 버너를 놓고 쪼그려 앉아 굴비를 구웠다. 굴비 연기에 열어 놓은 창 너머의 한강이 지워졌다 나타나곤 했다. 우리는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굴비 살을 잘 발라 그의 밥공기에 얹어 줬다.

“어떻게 이렇게 살만 발라낸 거야?”

“나도 예전에 시장에서 일할 때 배운 거야. 이렇게 꼬리랑 머리에 젓가락을 잡고 흔든 다음에 등을 따라 이렇게 가르고, 다시 머리를 잡고 쭉 당기면……”

문득 내게 이걸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깨달았다.

“아, 이런 거구나. 어렵지 않네.”

“응. 나중에 애인에게 해 줘.”

굴비 살을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그의 손이 멈췄다.

“왜 그런 소릴 하는데?”

나는 짐짓 모른 척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맨밥을 밀어 넣는 동안 고개 숙인 날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정수리로 느낄 수 있었다.

“김치가 딱 맞게 익었네.”

나는 고개를 들어 김치를 찢으며 그에게 미소 지었다.

밥을 먹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봤다. 그의 방에는 편집한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작은 프로젝터가 있었고, 그의 집에서 자고 갈 때면 함께 영화를 보곤 했다. 그는 옛날 영화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위해 고전 명작 영화 100선 따위의 리스트에서 비디오를 빌려오곤 했다. 화면 속에서는 내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침대에 함께 기대 그의 할머니가 선물했다는 호랑이가 그려진 빨간 담요를 두른 채 한 늙은 독일인 여성이 열 살 어린 아랍계 노동자와 결혼하고 결별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반쯤은 건성으로 화면을 보며 나는 자꾸만 내 발을 그의 발에 겹쳐보았다. 아아, 좀 더 작으면 좋을 텐데. 내 발이 그의 발보다 더 작아서 그의 발에 완전히 가려 진다면 좋을 텐데.

“재미없어?”

“아니. 보고 있어.”

발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난 나는 그의 손을 펼쳐 손금을 보았다. 흩어져 그어져 있는 선들에서 우리 미래의 답이라도 있는 양, 나는 뚫어져라 그 선들을 바라보고, 따라가고, 다시 그려보고 읽어보려 했다. 명멸하는 프로젝터의 빛에 따라 손바닥의 색깔이 자꾸 변했다.

“영화 끌까? 재미없지?”

“아니. 보고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 여주인공이 콜라병 앞에 앉아 뚫어져라 앞을 보는 첫 장면부터 나는 그녀의 불안에 교감했다. 그러므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닥쳐 올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손금을 읽는 일이 더는 영화에서 시선을 떼놓지 못하게 됐을 때, 영화 속 두 배우는 결혼을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하는 그런 결혼 장면이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바득 바득 이를 갈면서라도 행복해야만 하는 그런 결혼식이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그는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멈췄다.

“왜?”

“아니. 그냥……”

“괜찮아?”

“응…… 그냥…… 부러워서.”

화면 속에는 축복받지 못하는 부부가 있었다. 나이 차이도 났고, 인종도 달랐지만, 적어도 여주인공은 여자로 태어났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기다렸다.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침묵한 채 그렇게 있었다. 그는 끝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잡아 내 쪽으로 돌렸다.

“괜찮아. 봐.”

그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내 말에 마른침을 삼킨 그는 크게 눈을 깜빡였다. 내가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으로는 우리 관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나의 끝내자는 선언은 날 잡아달라는 또 다른 말이 될 테니까.

“저기……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낼까?”

바보야. 그냥 친구 같은 건 없어.

마지막까지 너무나 어설픈 그의 모습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나는 울지 않기 위해 그의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하얗게 되도록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태연한 목소리를 억지로 밀어냈다.

“응.”

기다렸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빈말로 묻는 안부라도, 술에 취해 보내는 ‘자니.’라는 문자라도. 서로 사이에 아는 사람이 상대뿐이었으므로 연락이 끊기자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결코 전화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우리 관계의 무게를 이제 그 역시 알고 있으므로 결코 다시 전화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걸. 다시 연락하는 순간 함께 그 지옥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전화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동시에 너무나 보고 싶어 숨을 쉴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을 한 번 보고 말을 한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미니홈피를 찾기 위해 수많은 동명이인의 미니홈피를 검색했다. 우연이라도 그에게 닿을 수 있게 이름과 이름을 클릭하고 또 클릭했다. 그중 하나에서 아이팟을 발견했다. 사고는 싶지만 매킨토시에서만 음악을 넣을 수 있기에 포기했다는 짧은 소감이 달린 사진과 함께.


전송률을 알려주는 막대그래프가 100퍼센트를 나타낸 후 화면 속에서 사라졌다. 커피는 이제 식어 있었다. 오후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강은 이제 더는 빛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그의 키보드 아래 숨겼다. 이제는 이 집에서 찾을 수 없는 내 흔적에 대한 나름 소심한 복수였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나 그가 결코 나오지 않았던 닫힌 방문을 노크했다.

“미안. 번거롭게 해서.”

“괜찮아. 친구끼리.”

친구라는 단어가 나이프처럼 곧장 가슴에 박혔다. 그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초래한 것이었으며 내 예언의 실현이었음을.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못하겠구나.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아비드와 한 뺨 한강과 함께 밥을 먹던 식탁과 무엇보다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그의 귀밑머리에서 새치가 보였다. 그 은색에 기쁘고 슬펐다.

“잘 들을게.”

나는 광고의 한 장면처럼 아이팟을 들어 올렸다.

“뭘, 언제든 새 음악 듣고 싶으면 연락해.”

그는 내게 좋은 친구처럼 말했다. 익숙했다. 내가 아직 남자였을 때 내 모든 짝사랑들이 그랬으니까. 나는 현관을 나서려다 멈췄다. 그리고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날 주차장에서 왜 날 기다린 거야?”

“모르겠어. 그냥 너밖에 안 보였어.”

나쁘지 않은 등가 교환이었다. 나는 그에게 첫 여자였으며, 내 아이팟에게는 이것은 마지막 음악 목록이니까. 작업실 문이 닫혔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미선이의 <송시>가 흘러나왔다. 눈물과 함께. 이럴 줄 알고 있었는데도 왜 이토록 가슴 아픈 걸까.


“괜찮아. 우리라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든 거야.”

마담 언니는 내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요?”

“그게 아니면 그 흔한 사랑 노래가 왜 그렇게 많겠니. 그저 흔한 실연이야.”

어느 것도 하나 내 것 같지 않지만 모두 내 맘 같은 흔한 이별 노래.

그렇게 하드디스크가 망가지는 3년 후 여름까지 내 주머니에는 천 곡의 이별 노래가 있었다.

임성순
소설가, 1976년생
장편소설 『컨설턴트』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극해』 『자기 개발의 정석』 『우로보로스』, 소설집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