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작가 온라인 대화
①차갑고도 뜨거운

  • 한중 작가 온라인 대화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①차갑고도 뜨거운

이즈음 한국의 소설은 소재나 서술 방식, 발표 매체 등 여러 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자의 선호도가 변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겠으나 문학이 단지 읽기에 그치지 않고 영화, 연극, 드라마, 문화행사 등등 문화 전반의 다양한 양식들과의 연계가 가능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겠지요. 종이책 출간을 건너뛴 채 오디오북의 형식으로 독자와 만나는 등 발표의 형식 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특이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이 강하게 부상하면서 성장소설과 가족 소설, 역사소설, 팬데믹 시대와 어우러진 지구 종말, 좀비, 귀신 등 소재에서도 다채로운 경향을 보입니다. 특히 문학 일반을 넘어서는 다각적인 방면의 지식과 상상력의 융합이 시도되고 있는데요, 가령 생태계, 자연 현상, 과학, 종교, 심리학, 문화학, 고고학 등등의 장르와의 혼종을 보이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더라도 한국의 소설은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수십 년간 계속된 말이긴 하지만)고 하겠습니다.

지난주 저는 한 매체로부터 인공지능 딥러닝에 사용할 콘텐츠로서의 소설을 모집하고 있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는가 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소설을 가공하여 인공지능, 그러니까 로봇의 데이터에 축적하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제공한다는, 정부 산하기관의 야심찬 계획이었지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실행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소설을 쓰면서, 학생들과 공부하면서 소설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걸 체감하고 있어 이런 시도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어 승낙하는 답을 보냈습니다.

사실 이런 시도는 독자 저변을 확대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소설의 깊이가 사라진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소설 쓰기란 기본적으로 나의 이야기로 누군가를 움직인다, 하는 목적을 가진 행위인데요, 우리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지요. 아무튼 종이책으로만 독자를 만날 수 있던 과거에 비해 소설의 영역이 넓어진 시대의 작가가 되려면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해 볼 각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소설에 대한 저의 생각은 소박합니다. 어떤 이는 기계를 조립하고 누군가는 건물을 청소하듯 저는 글을 쓴다, 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본래 무슨 일이고 시작하면 그저 딴생각 없이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저에 대한 평의 대표적인 것이 ‘성실한 작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난은 아니겠으나 저로서는 이 평이 콤플렉스로 작용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 독특한 상상력, 획기적인 서술 방식,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 이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일 테니 말이지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추스르기 위해 생각합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열심히 보고 있다,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 나는 열심히 쓰고 있다…… 제가 보고 겪고 생각하고 느낀 것에 대해 저는 열심히 씁니다. 대단히 많은 독자가 있는 것은 아니나 책을 내면 대체로 초판은 소화가 되고 간간이 제 책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전해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니 저는 행복한 작가입니다. 기본적인 답이겠으나 소설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글쓰기가 내게 그렇듯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작으나마 생각할 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소설은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이야기처럼 우리 삶에 작은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등단 이후 저는 꾸준히 ‘가족’이라는 제재를 소설에 담아왔습니다. 제 경험이 일천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가족’이란 소재가 파편화된 현대인의 다양한 면면을 그려내는 데 역설적으로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대가족 속에서 자라나 대가족인 남자와 결혼하고 친정과 시댁의 3대를 모으면 백 명이 넘는 엄청난 대가족의 일원인 제 개인사가 큰 이유이기도 하지요. 제 가족과 그 주변의 이야기만으로도 최소 장편 몇 권은 더 쓸 수 있다, 생각하면 흐뭇해지다가도 팩션, 융·복합적 상상력과는 전혀 다른, 촌스럽다 할 만한 소재의 소설을 계속 써도 될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대학 초년생, 시경(詩經)을 배우던 때를 떠올려봅니다. 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라는 공자님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사특함이 없는, 순수하고 올곧은 것만이 참된 문학이라 여기던 시절이었지요. 지금 2021년 8월, 어쩌면 사특해야만 주목을 받는 때가 도래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의 온도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기도, 뜨겁기도 합니다.

서하진
소설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0년생
장편소설 『나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소설집 『착한 가족』 『요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