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죽음과 죄의식의 극복으로서의 문학

- 시마오 도시오 소설 『죽음의 가시』

  • 명작순례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죽음과 죄의식의 극복으로서의 문학

- 시마오 도시오 소설 『죽음의 가시』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시마오 도시오는 ‘제3의 신인’으로 분류되는 일본 전후문학의 대표 작가다. ‘제3의 신인’ 작가들은 이념적으로 전쟁을 비판하면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전 세대와는 달리 패전 후의 혼란을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주로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소설을 썼기에 사소설 경향의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차례 극한의 상황을 겪은 시마오 도시오는 특히 자신의 내재화된 경험을 문학의 근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1943년 징집 대상자였던 시마오 도시오는 학도병으로 특공 어뢰정 훈련을 받고 가고시마현 가케로마섬에 해군 소위로 부임하여 1945년 8월 13일 출격 명령을 받지만 대기하던 중 전쟁이 끝난다. 숙명이라 생각했던 죽음은 패전으로 인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졌고 갑자기 다시 살아가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시마오 도시오의 평전을 쓴 고노 겐스케는 말한다. 전쟁 말기 어뢰정에 몸을 싣고 출격 훈련을 반복했던 것은 자신의 신체를 일종의 자살 기계로 만드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고. 기계로 무생물화된 그의 신체는 꿈과 무의식의 영역에 잠입하게 되고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종잡을 수 없는 감각 안에 흩어졌다고. 따라서 시마오에게 소설이란 바로 이 신체의 단편을 언어를 통해 한데 그러모음으로써 자신의 체험을 의미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마오 도시오의 대표작 『죽음의 가시』에서 주인공 시마오가 이상하리만치 반복적으로 죽음의 충동을 전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나의 전후는 미호와의 결혼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말처럼 출격 명령을 기다리며 죽음의 예행연습을 거듭했던 그에게 가케로마섬에서 만난 아내 미호는 말 그대로 생의 연속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가시』는 1954년 10월부터 1955년 6월까지 실제로 그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룬 사소설이다. 순종적이었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의 일기에서 불륜의 적나라한 흔적을 발견한 후 완전히 변모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한 남편은 자신이 변할 것을 약속하며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철저히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려 하지만 아내의 심문은 계속된다. 과거를 솔직히 다 털어놓으라고 추궁하는 아내 앞에서 남편은 과거를 전부 고백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거짓을 토대로 한 것이라 아무리 추궁한들 썩어빠진 거짓말밖에 나올 것이 없다며 과거는 그만 잊어달라고 하지만 심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은 고백의 불가능성을 토로하며 고백 대신 죽음으로 도피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의 일기에 적혀 있는 내용을 소설 속에서는 끝내 보여주지 않는 셈인데, 이는 시마오 도시오가 이 소설을 통해 고백하고자 하는 것이 과거의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간은 주인공의 과오 때문에 과거에 저당 잡혀 있다.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는 적당히 끊어내야 하지만, 아내의 추궁과 함께 과거는 늘 되살아나 현재를 파고든다. 시마오 도시오는 그 절망의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선택을 한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새로운 과거를 만들면 그게 쌓여 머지않아 낡은 과거를 꼼짝하지 못하게 압박하리라는 데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그 시간을 견뎌내려 하는 것이다. 가정과 일상이 파탄 나면서 자기 자신이 붕괴하여 살 의지를 잃었을 때 그가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은 결국 소설 쓰기였다. 이는 시마오 도시오가 택한 속죄의 방식이면서 자신이 왜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고백이다. 자신의 발치에서 오열하는 아내의 작은 몸에서 자신이 통과해 온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이력을 본 것처럼 『죽음의 가시』는 여러모로 시마오 도시오의 문학 편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죽음의 가시』는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84권으로 출판되었다.

이종은
번역가, 1973년생
역서 『D자카 살인사건』 『황금가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