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구 희곡 「당선자 없음」
- 이양구 희곡 「당선자 없음」
제3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이양구의 희곡 「당선자 없음」은 그간 꽤 익숙했던 문구인 ‘당선자 없음’을 다시 보게 한다. 마땅히 있어야 할 존재가 ‘없음’으로 간단히 부정되 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가 희곡에서 언급한 출처는 ‘1948년 정부수립 기 념 표어 현상 모집에서 4천353편이 응모되었지만 1등은 없었다’는 실화이 다. 한편 작가는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존재했던 ‘이익균점권’, 즉 ‘노동자들 이월급과는별도로회사와이익을나눠가질수있는권리’가어떤과정으 로 제헌헌법에 포함되었으며 그 이후 왜 삭제되었는지 추적한다. 그리고 이 익균점권과 함께 사라진 존재는 누구인지 묻는다. 이양구는 2014년 초연된 <노란봉투>에서저까마득한크레인위에매달린노동의현실을날것그 대로 대면하게 했다. 평택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일곱집매>(2012), 청 소년들의 불안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복도에서>(2014), 블랙리스트 의혹 을 풍자한 <씨씨아이쥐케이>(2016) 등 다양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이양구 는 여전히 크레인 곁에 서 있는 작가로 느껴진다. 첨예한 사회현실을 다루 는 작품은 자칫 이분법적 구도에서 오는 전형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당선 자 없음」은 이분법의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 최초의 혼돈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며 그들이 설계하고 합의했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작품은 제헌헌법이 제정되었던 과정을 재현한 가상의 연극과 8.15 특 집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한 방송국의 사무실, 그리고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방송국 프리랜서 작가들 의 파업 농성장 등 세 가지 층위의 이야기를 교차하거나 중첩시키며 전개된다. 그 중심에는 얼마 전까지 방송을 준비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프리랜서 피디의 죽음이 있다. 동 료작가와새로투입된피디는그를애도하는대신그의부재가가리키는진실을찾아나선다.해방후임 시정부는 고등고시 합격자 출신 조선총독부 관료들에게 제헌헌법을 맡긴다. 그들은 “일제에 부역한 우리 들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선진 관 료제도에 대한 지식만은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헌법 초안 작성에 매진한다. 그렇 다면 ‘이익균점권’은 그들에게서 나온 작품일까? 방송국 내에서는 조선총독부 관료들로부터 헌법초안이 작성되었다는 내용을 삭제하라는 압력이 거세진다. 그들의 존재를 감추려는 사람은 어딘가의 사장이거 나 이사장이다. 출입증이 아닌 방문증을 걸고 출근하는 프리랜서 구성작가들의 인건비는 제작비에 포함 되어 있다. 방송국은 더 적극적인 압력의 방법으로 제작비를 줄여 인건비를 없애게 한다. 농성장의 작가 들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방송을 만들고 있는 그들을 배신자라 욕한다. 이정피디가 자신의 사비로 작 가 인건비를 주면서까지 방송을 만들려 했던 이유는 늘 ‘없음’을 강요당한 이들이야말로 바로 이 자리에 있어야 할 ‘당선자’라고 말하기 위해서였지만, 정작 그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남한 단독선거 후, 1948 년 5월 국회에 제출된 제헌헌법 초안은 국회의원들로부터 ‘국민의 8할을 점하는 노동자, 농민을 무시하 는 헌법’이라는 비난을 받고서야 ‘이익균점권’을 추가한다. 그리고 그 조항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삭제된 다. 이양구는 당시의 국회속기록, 회고록, 평전, 비공식 역사 기록까지 방대한 자료를 망라하면서도 드라 마의재미와인물의깊이를놓치지않는다.사회적합의를통해세상의균형을맞추는것이법과질서라 면 기울어진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지금 우리에겐 어떤 저울추가 필요할까. 오랜 시간 집요하고 끈질기게 크레인 아래 세계를 응시해온 작가 의식의 무게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