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도서관 물귀신

  • 단편소설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도서관 물귀신

도서관에 물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벌써 몇 달 전부터 떠돌고 있었다. 책이 젖고 서가 주변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사건이 자꾸 벌어지는데 그 장소가 매번 달랐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 계속 물이 새면 누수가 생겼다고 짐작해서 전문가를 부르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다음 날 보면 서가가 멀쩡해서 안심했다가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맑게 갠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해 보면 갑자기 서가에 물이 흥건히 흘러 있곤 해서 주임 사서 김 선생님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김 선생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인을 색출하고야 말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어느 날 집에 굴러다니는 핸드폰 공기계를 가지고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에 공기계의 카메라를 켜서 서가를 비추도록 설치해 두고 도서관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하룻밤 숨어서 서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기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지만 도서관 시스템은 승인되지 않은 야근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출근했던 직원이 밤 10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않으면 경고 메시지가 자동으로 경비회사에 넘어가서 경비직원이 확인하러 오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김 선생님은 일단 영상을 찍어놓고 다음 날 확인한 뒤에 판단하기로 했다.

김 선생님의 오래된 핸드폰 카메라에 한밤중의 불 꺼진 서가를 비추는 최신식 ‘나이트 비전’ 기능 같은 게 탑재되어 있을 리는 없었고 야간 투시는 고사하고 핸드폰이 진짜로 오래되다 보니 충전도 잘 안 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김 선생님이 아침에 출근해서 간밤에 설치해 놓은 핸드폰부터 들여다봤을 때 오래된 핸드폰은 배터리가 방전되어 까맣게 죽어 있었다. 김 선생님이 불쌍한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고 어르고 달래서 마침내 다시 살려낸 뒤에 동영상 앱을 켜 보니 핸드폰이 죽기 직전에 허덕거리며 간신히 녹화한 약 20분 분량의 파일에는 그저 시꺼먼 어둠 속에 비상구 표시등만 엷게 녹색으로 빛나는 단조로운 광경만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실망한 김 선생님이 핸드폰 충전기를 빼고 동영상 앱을 도로 닫아 버리려 했을 때 화면에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휙 지나갔다.

김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허둥지둥 충전기를 도로 꽂고 동영상 앱을 열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만 다시 돌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핸드폰은 김 선생님이 보고 싶은 마지막 몇 초 구간만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상태진행 막대기를 손가락으로 움직일 때마다 동영상 시작 부분으로 돌아가서 화면에 비상구 표시등이 엷은 녹색으로 빛나는 시꺼먼 어둠만 한없이 단조롭게 비추어 주었다. 몇 번 그렇게 고집부리는 오래된 핸드폰과 씨름하다가 김 선생님은 포기하고 핸드폰이 보여주는 어둠을 성난 눈빛으로 노려보며 기다렸다.

영상이 끝나기 직전에 이번에도 화면에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휙 지나갔다.

그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두 번째로 확인한 뒤에야 김 선생님은 영상을 자기 SNS 계정으로 전송해서 고물 핸드폰보다 말을 잘 듣는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쪽이 낫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정도로 김 선생님은 놀랐던 것이다. 그래서 김 선생님은 핸드폰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도서관 무선인터넷은 등록된 기기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한 사람이 등록할 수 있는 기기 숫자는 2대로 제한되어 있었다. 김 선생님은 이미 현재 사용하는 핸드폰과 노트북을 등록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기를 추가할 수 없었다. 태블릿을 써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자주 있었는데 김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핸드폰 와이파이를 끄고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 사용허가 페이지에 접속해서 핸드폰 기기등록을 삭제하고 태블릿을 추가해서 사용하다가 다시 핸드폰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면 또 태블릿의 와이파이를 끄고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 사용허가 페이지에 접속해서 태블릿을 삭제하고 핸드폰을 추가하는 삽질을 반복해 왔다. 한번은 김 선생님이 그러다가 열받아서 그냥 태블릿을 무선인터넷 사용 기기로 등록해두고 핸드폰이 필요해지면 그때그때 데이터를 털어 썼는데 가장 값싼 요금제를 사용하다 보니 일주일도 되기 전에 데이터가 다 떨어져서 태블릿 와이파이 사용등록을 삭제한 뒤 다시 핸드폰을 도서관 무선인터넷에 등록해두고 이후 3주 동안 이를 악물고 집과 도서관과 길거리 공공 와이파이로 버텨야 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는데 김 선생님에게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도서관 무선인터넷보다 길거리 공공 와이파이가 신호강도도 훨씬 세고 사용하기 훨씬 편하더라는 사실이었다. 도서관에서 1인당 전자기기 3대 이상 한꺼번에 와이파이에 연결해 사용하고 싶으면 공문을 보내 허가를 받으라는 지침은 본 적이 있지만 공문을 어디로 보내라는 것이며 그 허가가 과연 실제로 내려오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얼마 전에 퇴임하신 관장님은 새로 취임했을 때 핸드폰과 노트북 외에 스마트워치를 도서관 무선인터넷에 연결하고 싶어서 그 허가를 내 달라고 시에 공문을 보냈는데 시는 정부 관련 부처에 직접 요청하라고 답변했고 정부 관련 부처에 공문을 보내자 해당 안건은 지자체 소관이니 지자체에 요청하라는 답변이 왔으며 그렇게 양쪽 기관 사이에 공문을 보내고 다른 쪽에 알아보라는 답변을 받는 ‘공문 탁구’를 진행하는 사이에 관장님은 정년퇴임했다.

어쨌든 그래서 김 선생님은 노트북에 오래된 핸드폰을 연결했고 낡고 지친 핸드폰은 케이블을 연결하는 즉시 놀라서 꺼졌다 다시 켜졌고 김 선생님은 이유 없이 재부팅하는 핸드폰을 말리려다가 다 켜진 폰을 다시 한 번 재부팅하고 말았으며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문제의 동영상을 노트북에서 재생해 보니 그 마지막 순간에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확실히 나타나긴 나타나는데 어쩐지 마치 그래픽으로 조작한 것처럼, 혹은 동영상 앱에 오류가 나서 노이즈가 생긴 것처럼, 다분히 가짜처럼 보였다.

김 선생님은 낙담했다. 수사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폐쇄회로 감시카메라 영상을 벽 가득 깔린 거대한 화면에 척 띄워서 막 확대도 하고 얼굴인식도 하고 프레임별로, 아니 픽셀별로 분석도 하고 그래서 이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한밤중에 도서관에 침입한 인간 범죄자인지 귀신인지 아니면 그냥 고물 핸드폰 동영상 앱이 일으킨 오류인지 확실한 답이 딱 나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보았지만 그런 건 그저 상상일 뿐이고 김 선생님의 현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 계간 <대산문화> 2023 겨울호(통권 90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보라
소설가, 1976년생
장편소설 『고통에 관하여』 『죽은 자의 꿈』, 소설집 『저주토끼』 『한밤의 시간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