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후기
한국문학의 형성을 가깝게 또 멀리서 읽기

- 연구서 『Formation of Periodical Authorship in 1920s Korea: Distant and Close Reading(매체를 통한 작가 네트워크의 형성, 1919-1927)』

  • 연구후기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한국문학의 형성을 가깝게 또 멀리서 읽기

- 연구서 『Formation of Periodical Authorship in 1920s Korea: Distant and Close Reading(매체를 통한 작가 네트워크의 형성, 1919-1927)』

 

작품의 출판은 어휘적, 의미적,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어휘를 조직하여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의미의 가치를 알아본 편집자가 이를 출판한다. 출판 뒤에는 그 의미를 음미하는 독자나 비평가가 글을 남기고, 그 글은 다시 작가에게 읽힌다. 그간 문학연구에서는 이 총체를 분절하여 주로 작가론, 작품론, 비평론 등의 영역에서 다루었다. 글이 출판되어 읽히는 과정은 이미 텍스트를 넘어서는 여러 관계를 체화하고 있음에도 한국문학 연구는 텍스트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작가론, 작품론, 비평론의 대상이 된 주요 작가와 작품의 텍스트만.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외국에서 제기되었다. 『Graphs, Maps, Trees(그래프, 지도, 나무)』(2005)라는 저서에서 프랑코 모레티는, 정전이 문학사 전체에서 1% 정도라면, 문학사에서 다루지 않은 나머지 99%의 방대한 작품(great unread)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질문한다. 한 작품을 꼼꼼하게 읽는 방식으로 대량의 작품을 해석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분석 방식의 전환을 제안했다. 즉, 다수의 작품을 대상으로 다양한 데이터로 만들고 그 속에서 텍스트를 넘어서는 관계를 찾아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방식을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라고 불렀다. 다양한 시기를 포괄하는 많은 자료를 장기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방식은 연구 초점의 변화를 수반한다. 개별적 사실과 독특한 성질에서부터 정기적으로 혹은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패턴과 구조로. 이 멀리서 읽기라는 수량적 방법론은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이 디지털화되고 또 수량적 접근을 넘어선 전산적 방식이 도입되면서 디지털 인문학, 특히 디지털 문학연구의 주요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했다.

필자의 저서, 『Formation of Periodical Authorship in 1920s Korea: Distant and Close Reading(매체를 통한 작가 네트워크의 형성, 1919-1927)』(Routledge, 2023)은 위에 언급한 모레티의 문제의식, 즉 문학연구에 있어서 수량적 접근방식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책이다. 1920년대 근대문학의 발생을 역사적 배경으로, 잡지를 통한 저자성(authorship)의 형성과정을 멀리서 읽고 또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연구 대상은 당시의 주요 신문과 《창조》(1919~1921), 《개벽》(1920~1926), 《조선문단》(1924~1927)과 같은 주요 잡지들로, 잡지에 대한 작가의 소설 투고 패턴, 동인지 내의 소설 작성 문법, 잡지에 사용된 어휘와 특정 어휘 옆에 등장하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共起語) 등에 초점을 맞추어 수량적 분석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근대문학 형성 시기에 특정 유형의 작가유형이 잡지를 통해 등장하는 과정을 밝혔다.

1장에서는 1920년대의 문학장을 사회학에서 사용하는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거시적으로 펼쳐보았다. 80종이 넘는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소설을, 연도, 작가, 출판매체, 소설 제목 등의 데이터로 정리하여 네트워크로 묶어보니 정기간행물이 매개한 작가 집단의 관계가 새롭게 드러났다. 이를 통해, 이광수와 같은 문학의 아이콘보다 최서해와 같은 생계형 작가들, 또 김명순과 같은 여성작가들이 당시 작가-매체의 네트워크 형성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학 형성기에 나혜석이나 김명순과 같은 여성작가들의 존재감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남성작가들이 문단을 지배했는가?

2장에서는 《창조》를 꼼꼼하게 읽고, 남성 동인이 만들고 공유했던 낭만주의 서사의 어휘와 문법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종교적 어휘였던 “생명”을 예술적 천재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유하고 이를 젠더화하여 남성적 예술가만을 형상화하는 집단적 문법으로 고착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이 문법을 공유함으로써 작가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다. 저서에서는 이러한 작가유형을 “나르시스적 작가”라고 부르고, 당시 동인지를 통해 등장한 저자성의 한 유형이라고 주장한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문학이나 예술이 창작의 초점이었던 동인지와는 다른, 즉 주제적 구성이 훨씬 다양했던 종합지에서는 어떤 창작이나 비평의 방식을 발전시켰을까? 3장에서는 당시의 사회 문화 운동을 주도했던 《개벽》을 토픽모델링이라는 확률적 방식을 통해 전체의 주제를 파악한다. 특히 그 안에서 낭만주의의 원류가 된 “생명”이라는 주제와 사실주의의 원류가 된 “생활”이라는 주제가 결합하는 양상을 살펴본다. 저서에서는 사회개조를 지향한 비평가집단이 이 “생명”과 “생활”의 의미망에서 등장했음을 밝힌다. 그들은 그 의미망에서 미래의 시간성을 전유하며 등장했는데 필자는 이를 “예언가적 비평가”라고 명명했다.

4장에서는 《개벽》과 《조선문단》의 작품 비평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3장에서 논의된 담론 분석이 어떻게 현장비평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워드 임베딩(단어를 컴퓨터가 연산하기 쉽도록 벡터로 치환하는) 방식을 활용하여 비평가 이름 옆에 등장하는 단어(공기어)를 전산적으로 추적하였다. 이를 통해 문학사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태도”라는 일상어에 주목하고, 당시에 염상섭과 같은 작가-비평가가 어떻게 이 일상어를 비평용어로 전유하여 자신을 비평가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설명했다. 저서에서는 이를 “일상어의 비평가”로 부르고, 앞선 장에서 발견한 두 저자 유형과 함께 형성기 근대문학을 제도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본 저서는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 이보다 더 새로운 방법론적 시도가 한국문학 연구를 낯설게 하기를 바란다.

※ 『Formation of Periodical Authorship in 1920s Korea: Distant and Close Reading(매체를 통한 작가 네트워크의 형성, 1919-1927)』은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2023년 영국 Routledge에서 출간되었다.

이재연
UNIST 인문학부 교수, 디지털인문학연구센터장, 1972년생
저서 『세계 디지털 인문학의 현황과 전망』(공저), 역서 『그래프, 지도, 나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