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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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외계인

수업이 끝나갈 즈음, 한 아이가 교실로 들어섰다. 소란스럽던 교실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도 멎었다.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도자기 피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 훤칠한 키, 군살 하나 없는 몸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솜씨 좋은 예술가가 빚은 듯한 완벽한 비율의 눈, 코, 입. 그야말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조화로운 외모에 눈이 부셨다.

잠시 놀라움으로 눈망울을 키웠던 아이들은 곧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어도 ‘에이, AI네’라는 표정들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인간이라면 저렇게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생님, 누구예요?”

누구보다 성형미를 자랑하는 해나였다. 해나의 꿈은 인간 AI가 되는 거였다. 해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랬다. AI처럼 완벽한 외모를 갖는 것!

인간이 해오던 일을 AI가 대신하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덕분에 인간은 마음껏 여가를 누리며 즐길 수 있었다. 연예인, 화가, 작가, 방송인, 법조인, 의사 등등. 사회 전반에 걸쳐 AI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들의 능력은 점차 인간의 능력보다 월등해졌다. 그러자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인간이 AI를 우러러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과 닮기를 원했고, 그들처럼 완벽해지기를 바랐다. 급기야 인간들은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하나가 성형수술이었다. 이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AI 의사는 정확하게 인간의 세포를 분석하여 부작용 없는 수술을 해냈기에 수술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불행하게도 나만 빼고.

“선생님, 쟤가 왜 여기 왔냐니까요.”

짜증스러운 말투로 해나가 다시 물었다.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우리 학교의 설립 목표는 ‘인간다운 삶’이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인간 아이만이 다닐 수 있었다. 즉 AI는 절대 출입금지라는 말이었다.

“호호, 나 AI 아니야. 이름은 나루나.”

“헐, AI 아니었어?”

루나가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생글생글 웃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와우! 도대체 성형은 어디서 한 거야? 정말 잘했네.”

누군가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의 입으로 쏠렸다. 아이의 입에서 병원 이름이라도 튀어나오면 곧바로 달려나갈 태세였다.

“나 얼굴에 칼 한 번 안 댄 자연산이거든.”

루나가 콧방귀를 핏, 뀌었다. 생긴 것처럼 도도했다.

“우아, 자연산이래, 자연산.”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와글와글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눈길을 내 쪽으로 돌렸다. 너도 자연산인데 너무 다르잖아.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늘 겪는 일인데, 이럴 땐 정말 견디기 어렵다.

“이봐, 외계인. 뭐라고 한마디 해보시지.”

운 좋게도 성형 한 번으로 꽃미남 스타일로 변신한 장우였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으스대며 내 외모에 대해 놀리기를 즐겼다.

“하하, 외계인. 외계인.”

아이들이 ‘외계인’이라는 단어를 굴리며 와글와글 떠들어댔다. 심심하던 차에 먹잇감을 발견한 이리떼 같았다. 외계인! 차라리 외계인이라면 좋겠다. 그렇다면 아예 지구를 떠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한숨을 폭 쉬었다.

“자자, 그만 해요. 우리 학교의 설립 목표를 잊었나요? 인간다운 삶이잖아요. 소라는 무엇보다 인간다운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어요. 겉모습보다 마음! 잊었어요?”

마침내 선생님이 나서서 케케묵은 말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러는 선생님은 성형을 몇 번이나 하셨나요?’

씁쓸한 코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은 지난 홈스쿨링 기간에 살짝 손을 댔는지 눈과 코가 더 AI스러워져 돌아왔다. 그런 어른들의 영혼 없는 칭찬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익숙하다. 어른들은 대개가 그랬다. 내가 수술받을 수 없는 체질이라는 걸 알고는 외모보다 마음이라느니,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사회가 다양해진다느니, 해괴한 말로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어쨌든 선생님의 꾸중에 와글거리던 아이들은 조용해졌지만, 외계인이라는 가시는 온종일 가슴에 남아 콕콕 찔러댔다.

 

전학생 나루나는 도도하고 거만했다. 아이들의 부러움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중심이 되어갔다. 나루나 옆에는 항상 아이들이 파리떼처럼 들끓었다.

오늘도 아이들은 나루나 옆에 모여 찧고 까불다가 우르르 학교를 빠져나갔다. 나는 아이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다가 슬그머니 옥상정원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파란 하늘이라도 보면 울적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빨강, 노랑, 보라, 분홍빛의 꽃들은 연두, 초록 잎과 잘 어울렸다. 키다리 꽃, 앉은뱅이 꽃. 저마다의 자태와 빛깔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AI 정원사가 날씨와 온도를 분석하여 맞춤으로 가꾼 덕분이었다.

‘하물며 식물들도 맞춤 서비스를 받는데 나는 어쩌다가…’

기분전환을 하려고 올라왔지만, 아름다운 식물들을 보니 더욱 울적해졌다.

처음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벌써 삼 년 전의 일이었다. 내 몸을 스캔하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특이체질이라서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특이체질이라니요?”

나보다 엄마가 더 놀랐다.

“마취성분에 대한 알러지가 심합니다. 수술 중에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 어떻게 방법이 없나요?”

엄마는 말까지 더듬었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기계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소라야, 앞으로 마취제가 새로 개발되면 수술받을 수 있어. 우리 그때까지만 참자.”

엄마는 AI를 닮은 크고 둥근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엄마의 눈은 원래 어떤 모양이었을까? 나처럼 작고 가느다란 눈이었을까? 엄마의 오뚝한 코는 나처럼 납작하고 뭉툭했을까? 나는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을 되뇌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하늘 끝에 붉은 노을이 번졌다.

‘저 우주 속에 내가 살던 별이 있다면.’

나는 간절히 빌었다. 정말 내가 외계인이기를. 그래서 내가 살던 별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나 같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사는 별이기를.

그때였다.

“외계인!”

누군가 내 어깨를 톡 두드렸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뜻밖에도 나루나가 생글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잘못 보았나 싶어 두 눈을 껌벅거렸다. 나루나가 여길 올 까닭이 없지 않나. 그러다가 불쑥 화가 났다. 외계인이라니.

“너 정말 자연산 맞아?”

확인해보고 싶었다. 인간이라면 저렇게 완벽할 수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AI인데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지 어떻게 아나. 루나의 한 마디에 검증 한 번 하지 않고 모두가 감쪽같이 속고 있는 거 아닐까. 의심의 구름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솔직히 말해. 너 AI 맞지? 우리를 속이고 몰래 들어온 거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내가 주눅들 이유가 없다. 힘으로 대결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풋, 아니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루나가 말을 끊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루나의 맑고 푸른 눈동자에 잠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솔직히… 나도 외계인이야.”

“뭐, 뭐?”

말문이 막혔다. 나를 놀리는구나 싶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꼴라꼴라 행성이야. 태양계 밖에 있어. 원래 내 이름은 나루나꾸꾸야. 외계인이란 뜻이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 사람들은 모두 너처럼 생겼어. 그래서 나도 너처럼 놀림 받고 살았거든.”

루나가 손을 뻗자, 노을빛 하늘에서 둥근 원반형 물체가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세상에, 우주선이라니. 나는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우리 별에서는 네가 예쁘다고 난리일 걸.”

루나가 같이 가자는 듯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그리도 간절히 바라던 일이건만 선뜻 손을 내밀 수 없었다.

“하아!”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말인즉슨 루나의 별에 사는 사람들은 죄다 나처럼 못생겼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루나처럼 생긴 아이는 거꾸로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인가.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하하. 아이고, 왜 이렇게 웃기냐?”

눈물이 나올 만큼 한바탕 웃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루나야,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예쁘고 안 예쁘고는 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거잖아. 아, 뭐야. 시시하게.”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 모든 게 시시해졌다.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여기서 지내보니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이제 나도 돌아가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루나가 손짓하자, 우주선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고 루나는 빨려들듯이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소라야, 잘 있어. 그리고 행복해야 해.”

루나가 손을 흔들었다. 가뿐하게 떠오른 우주선은 곧바로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하얀빛으로 스러지는 우주선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아주 잠깐 꿈을 꾼 것 같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남았다. 꼴라꼴라 행성에서는 나도 예쁜 아이라는 것.

‘후후, 재미있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힘차게 돌아섰다.

원유순
동화작가, 1957년생
동화집 『까막눈 삼디기』 『고양이야 미안해』 『우정계약서』 『떠돌이별』 『내 이름은 3번 시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