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세상의 모든 벤치

  • 내 문학의 공간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세상의 모든 벤치

 

어릴 적부터 사과, 복숭아 같은 과실수를 심어 때가 되면 잼을 만들어 유리병에 담아 친구들과 나눠 먹는 로망이 있었다. 마당이 필요한 꿈이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선택한 곳이 큰 공원 주변의 집이었다. 내게 공원은 집의 확장이고 마당이기 때문이다.


글이 안 풀릴 때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관찰하는 취미가 있는데, 1번부터 5번까지 좋아하는 벤치의 순위가 있을 정도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기 좋은 벤치, 책 읽기 좋은 버드나무 사이 벤치, 강아지를 관찰하기 좋은 자작나무 옆 벤치, 종일 볕이 들지 않는 메타세쿼이아 길 너머의 벤치들… 셧다운으로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코로나 초기에는 아무도 없는 밤 벤치에 앉아 계절의 매듭마다 들리는 소리를 채집하곤 했다. 맹꽁이, 개구리, 습기가 다른 바람과 풀벌레 소리들. 그리고 그 힘으로 집으로 돌아와 답답함을 꾹 눌러 담은 몇 개의 문장을 토하듯 써내려가곤 했다.

 

몇 년간 호수공원에는 수백 개의 벤치가 더 생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산책로가 단순한 편이라, 퇴근길 교통 정체처럼 종종 병목 구간이 생긴다. 그때마다 벤치에 앉아 이 거대한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다리와 샛길을 상상했다. 혈관처럼 연결된 다리와 샛길이 덩어리같이 혼잡하게 뭉친 산책가들을 분산시켜 여러 갈래로 흩어놓는 상상 말이다. 사실 고양시청에 호수 다리와 공원 샛길 프로젝트를 위한 제안서를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엉뚱한 상상이 가득한 이 제안서가 곧 소설의 도입부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보내진 못했다.


뉴욕에 머물 때, 센트럴파크에 자주 갔었다. 노트를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몇 글자 적다가 오는 루틴이 생겼는데, 우연히 벤치 뒤에서 죽은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한 한 남자의 글이 적힌 동판을 발견했다. 행간 사이의 어떤 ‘사연’이 내 상상력을 자극해 훗날 이 미스터리한 동판에 대해 취재했었다. 3개월 후, 나는 이것이 센트럴파크 내 시설 유지와 설치를 위해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세워졌고, 이렇게 세워진 벤치의 숫자가 수천 개가 넘는다는 걸 알게 됐다.

 

필자가 찾는 공원의 벤치    

 

문득 직장인 시절, 막막할 때 앉아 쉬던 정동 길의 벤치와 마감 때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앉던 여의도공원의 벤치가 떠올랐다.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 패션지 에디터, 인터넷 서점 엠디와 라디오 디제이까지 내가 했던 대부분의 일은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 모든 문학의 공간 속에는 세상의 벤치가 존재한다.

 

맨해튼의 설계자 ‘로버트 모지스’는 맨해튼 중심에 큰 공원을 짓지 않으면 향후 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거라는 충직한 조언을 들었다. 실제 구글 지도를 살펴보면 이 거대한 공원은 복잡한 도심 속 유일한 ‘녹색 직사각형’으로 남아 텅 빈 초원을 연상시킨다. 벤치에 앉아 쉴 때마다, 나는 우리가 공원과 세상 모든 벤치에 진 빚에 대해 생각한다. 더불어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카페나 식당 대신 세상에 더 많은 벤치가 생긴다면, 앉아 있는 우리 눈에 담길 풍경은 ‘시민 공동의 추억’이 될 것이란 생각에 즐거워진다. 나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에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좋은 것들은 공짜가 아닌가. 하얀 이불처럼 눈에 덮인 고요함, 봄날의 찬란한 햇살과 버들강아지, 지친 존재들이 쉬는 작고 소박한 공원과 벤치… 고개를 들면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온하도다~”는 브라우닝의 시가 주기도문처럼 흘러나오는 한껏 높아진 가을의 하늘은 어떤가.

백영옥
소설가, 1974년생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다이어트의 여왕』, 소설집 『아주 보통의 연애』,
에세이 『힘과 쉼』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