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첩
2008년 아라비아해상의 유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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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2008년 아라비아해상의 유조선에서

2008년 아라비아해상의 유조선에서 필자(맨 앞줄 오른쪽 두 번째)와 동승 작가들, 모든 승선원이 함께 찍은 사진     

 

그대들은 둘 다 컴컴하고 조심스럽다.

인간이여, 아무도 그대 심연의 밑바닥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은밀한 보물 알 길 없다.

그토록 악착같이 그대들은 비밀을 지킨다!

 

보들레르의 「인간과 바다」라는 시의 일부이다. 인간이든 바다든 둘 다 속은 깊은 심연이다. 우리는 그 속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심연을 다루는 작가들은 유달리 바다에도 매료되는 것이다. 2008년 12월, 현대상선에서 대양을 체험하고자 하는 작가들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나라 서해에서 아라비아해까지 3주간 유조선을 타게 되었다. 우리가 탄 28만 톤급 유조선은 갑판 둘레만 산책하는 데도 30분 이상이 걸리는 큰 배였다. 그게 어쩌면 내 인생에서 최초로 바다라는 거대한 우주, 또는 괴물과 제대로 대면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체험으로 후에 나는 중편 소설 「딥 블루 블랙」을 썼다.

이 사진은 하선하는 날에 망망대해에서 한 배를 타고 동고동락했던 선장, 기관장, 항사들, 기관사들, 조리사들까지, 모든 승선원이 동승 작가들과 브릿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앞줄 중앙에 앉은 내 좌우에 이성아·김종광 소설가와 맨 뒤 왼쪽에 유용주 작가의 얼굴이 보인다.

권지예
소설가, 1960년생
장편소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4월의 물고기』, 소설집 『베로니카의 눈물』 『꽃게 무덤』,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