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장
한국판 홀로코스트 서사의 한 극점

- 현기영 장편소설 『제주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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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한국판 홀로코스트 서사의 한 극점

- 현기영 장편소설 『제주도우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죽음과 유령들의 세계” 그 참혹한 홀로코스트의 현장에서 “이 저주받을 망령들아, 비통할지어다!”라고 했던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신곡』의 세계를 떠올리며 가까스로 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의 기록에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깊은 탄식의 제목을 붙였다. 현기영의 『제주도우다』에서 초점 인물 안창세는 정지용의 「향수」를 비롯한 시편들을 잘 암송한 덕분에 4·3의 불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록 살아남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죽은 자”로 평생을 그 트라우마 속에 갇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 섬사람들은 비극적이게도 대개 두 부류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죽은 자”……

“살아 있는 죽은 자”는 트라우마 속에 갇혀 혹은 군부독재의 억압에 갇혀, 말할 수 없는, 속절없는 서발턴(Subaltern)이었다. 1978년 「순이 삼촌」이 발표될 때까지 황금 쥐띠 해였던 무자(戊子)년(1948년)에 바람 타는 섬에서 있었던 ‘가장 잔인한’ 사월의 이야기를 제주도민의 시선으로 말할 수 없었다. 이 작품으로 1979년 10월 신군부의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던 작가 현기영은, 이후에도 줄곧 제주 서발턴의 입과 손이 되고자 했다. 1901년 신축민란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다룬 『바람 타는 섬』,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 여러 문제적 작품들에서 제주의 말, 말, 말들을 곡진하게 전했다. 마치 제주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언어의 사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현기영은 곧 제주를 위한 제주의 작가로 받아들여졌다(물론 그는 제주 아닌 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많이 썼다). 2023년 작 『제주도우다』는 그 제주도 이야기의 결정판처럼 보인다.

1948년 4월, 미군정 하에서 군경의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해변 마을을 제외한 130여 개의 마을이 거의 다 불에 타 버린 참혹한 홀로코스트의 이야기. 처절하게 상처받아 응어리진 제주혼을 정중히 초대하여 위무하고 맺힌 한을 풀어내려 한 간절한 애도의 서사. 결국 제주도 전체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대하소설. 마치 엑스타시에 오른 샤먼처럼, 샤먼-작가의 말짓풀이는 오래 억눌렸던 서발턴들의 목소리를 저마다의 빛깔로 토해낸다. 제주의 신화와 설화의 소용돌이를 현재적으로 되살리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제주 삶의 실상과 역사를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4·3항쟁의 비극을 넓고 깊게 해부한다. 엄청난 국가 폭력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시선과 발길을 따라가며 전개되는 애도의 서사는, 임철우의 『봄날』 등과 더불어, 한국판 홀로코스트 문학의 한 극점을 절감하게 한다.

4·3항쟁의 전사를 다룬 2권까지는 왜 무자년 4월에 제주의 젊은이들이 그 푸른 청춘을 걸고 산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그들의 지향과 열정을 어떤 제주 신화의 맥락에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인가, 하는 서사 문제를 풀어낸 것이다. 3권은 눈물 없이는 읽기 어려운 홀로코스트의 현장이다. 전체적으로 깊은 고통에 젖게 하는 비극적 이야기지만, 그 비극의 심연에서 아름다운 영혼의 초상을 보이는 정두길을 비롯한 여러 청년의 이야기는 감동의 자장을 형성한다. 교사이자 시인 지망생이었던 그는 산의 동굴에서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죽지만 다시 태어날 거다. 대지의 자궁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니까.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 마침내 그 자궁에서 새 생명들은 솟아나 대지 위에 다시 번성할 거여.”(3권, 351쪽) 이런 소망을 남기고 죽어간 이들이 소망했던 정녕 살만한 세상, 그 새 생명의 세상을, 우리는 이루며 살고 있는가, 깊이 성찰하게 한다.

우찬제
평론가,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2년생
비평집 『애도의 심연』 『프로테우스의 탈주』 『고독한 공생』 『타자의 목소리』 『상처와 상징』 『욕망의 시학』 『나무의 수사학』 『불안의 수사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