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강아지 ‘나무’와 오래 걷는다.
자유공원, 월미공원, 화도진공원
만석·화수 해안길, 송현근린공원
월미도 애견 운동장, 차이나타운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해 뺑뺑이를 돌리면
어딘가에서 멈춘다.
강아지는 어디든 다 좋다고 줄을 당긴다.
나도 나에게 줄을 당겨 흰빛으로 걸어간다.
열하고도 둘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생각들은
어디서부터 와서 지금으로 출렁이는 걸까
아마도 열두 살의 시월이었지
소읍이었고, 반공일이었고, 배가 조금 고팠어
학교를 파하고 홀로 저수지 가에 누우면
사금파리들, 한쪽 눈을 찡그려야만 볼 수 있는
무채색의 마음들, 넓적하고 기다란 돌무덤
조막손으로 그러쥐고, 엷은 물의 춤을 묵도해
잊히지가 않아, 어제는 아름다운 포장지 같아
한참을 뜯어내다 보니 아무것도 없었어
아니, 어디로 날아갔는지 텅 비어있었어
따라만 가다가 문득, 시간을 앞질러 가게 됐지
숲속의 흔들의자는 지금도 이곳에서
흔들리고, 부서지고, 동요하고, 정돈됐지
걸으면서 생각할까? 생각하면서 걸을까?
초칠을 한 나무 복도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빛들
열두 번도 더 학교에 불을 지르고 웃었지
괜찮은 마음
이건 입자들의 긍휼한 집합이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면
발뒤꿈치부터 일어선 피톨들이
굽은 허리를 곧추세우곤 하는 거야
딱딱하게 굳은 날갯죽지를 동그랗게 굴리면
겨드랑이 속에서 뾰족하게 솟은 마음들
그렇다고 날 수는 없어, 그게 나일 수는 없으니까
오늘은 반달이야, 네가 반만 보여서 기쁨이지
나머지 반이 노래든, 춤이든, 다 괜찮아
각오는 실행되고, 결국은 반성하겠지만 말이야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배경을 삼켰다는 거지
한 계절의 테두리에 말랑한 결계를 친 바람처럼
걷고, 뛰고, 앉아서, 누워서…
오로지 지금의 이마에 뽀뽀와 포옹을 하는 거지
순해진 시간이 도시락의 스푼처럼 자꾸만 흔들거려
쓰러지고 뒤집혀진 마음들,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