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의 순간들
음지에 있던 퀴어 문학이 양지로 나오다

- 박상영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열풍

  • 우리 문학의 순간들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음지에 있던 퀴어 문학이 양지로 나오다

- 박상영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열풍

지난 2019년 7월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동성애 남성의 삶을 중심으로 오늘의 청춘 풍속도를 담은 소설집이었다. 놀랍게도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출간 한 달 만에 5쇄(1만8천부)를 찍었다. 등단 3년 차 작가의 순수 창작집치고는 보기 드물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공도서관에서 열린 독자와의 대화엔 450여 명이 몰렸다고 했다. 한국 문학에서 오랫동안 주변부의 어둠 속에 숨어있던 성 소수자 문학이 당당하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박상영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동성애 문학이라서 특별히 주목받는다고 의식한 듯, “심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굳이 우스갯소리로 사랑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소설가 이기호가 ‘생래적 유머리스트의 출현’이라고 평할 정도로 박상영은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다. 물론 그는 정색하면서 “마음먹고 쓴 퀴어(queer) 소설집이지만, 자전 소설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연신 배꼽을 잡지 않을 수 없고, 작가의 자전 소설이 분명하다고 착각하면서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이라 불리는 동성애 소설가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소설의 본령에 충실하므로 결국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영’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가운데 동성의 연인을 만난다. 그 사랑은 열정과 이별의 통속극을 보여준다. 애정이 권태로 이어져 다툼이 잦았다가 다시 화해하지만 뜻하지 않은 계기로 가슴 아프게 이별하는 것. 웃기면서도 슬픈 청춘의 애환이 활달하게 전개된다.

이 소설집은 그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비롯해 중편 4편으로 구성됐다. 나는 이 글을 쓰느라 모처럼 그 작품을 다시 뒤적거렸다. 두 남자가 생선회를 먹다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꽁치의 맛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라는 우주를 좋아한다’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대목을 다시 읽게 됐다. “용암을 뒤집어쓴 폼페이의 연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주 뜨거운 것이 나를 덮쳤고 순식간에 세상이 멈췄다.”

이른바 이성애(異性愛) 소설이었다면, 이 대목은 아주 진부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상영 소설은 아주 진지하게 매우 뜨겁게 읽힌다. 아무튼 박상영 소설이 성 정체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서 재미있게 읽히는 까닭을 설명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주인공 ‘영’의 여러 이야기가 연결된다는 점에서 한 권의 장편소설처럼 읽힌다. 청춘 풍속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세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가족과 집단 속에 깊이 내재된 갈등의 다면성을 포착했다.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장편소설의 본령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한 박상영은 “프랑스 작가 중 『마담 보바리』를 쓴 플로베르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가 시대 풍속을 잘 그렸기 때문”이라며 “내 소설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사랑을 애정, 우정, 모정 등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려고 한 풍속화처럼 읽힌다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통해 성 소수자의 삶을 대변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책도 7쇄(1만3천부)를 찍은 데 이어 두 번째 책도 성공한 셈이다.

국내에서 퀴어 문학은 지난 몇 년 사이 여성 소설을 통해 간혹 시도됐지만, 동성애 남성 소설은 드물었다. 박상영은 “국내 퀴어 문학은 종류가 빈약한 데다가 소수자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라면서 “나는 기왕이면 발랄하게 쓰고 싶었고, 퀴어보다는 20~30대 보편적 감성에 기대서 쓰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집에서는 기존 연애관이나 결혼관에서 벗어난 주인공의 좌충우돌하는 삶이 로맨틱 코미디처럼 전개됐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겨본 적이 없는 남자 주인공 ‘영’이 남성 편력이 화려한 여자 친구 ‘재희’와 동거하는 기묘한 상황이 소설 도입부를 형성했다. 두 남녀는 저마다 술을 함께 마셨거나 살을 섞은 적이 있는 남자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개성이 강한 남녀가 저마다 벌이는 청춘의 소동 묘사에 그치지 않았다. 동성애 아들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 어머니의 갈등이 서서히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도 담겼다.

문단에서도 진지하게 주목하면서 높이 평가했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월례 독회를 통해 이 소설집을 최종심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동성애 문학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고통과 차별, 우정을 모두 뒤집어 바라본다”면서 “동성애가 우리 사회에서 더는 낯선 이야깃거리가 아님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문학이 기본적으로 소수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사회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문학에서 성 소수자의 삶은 오랫동안 유난히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다. 성 소수자가 등장한 소설을 해설하는 비평가들도 애써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실존적 질문이나 사회적 억압이라는 차원에서 해석하곤 했다. 하지만 박상영 소설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자 퀴어 문학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의 등장’(문학평론가 김건형)이라는 평가가 언론에서 자주 인용될 정도로 박상영은 뭔가 ‘새것’의 기린아가 됐다. 더구나 그는 ‘퀴어 문학의 전도사’라도 된 양 언론 인터뷰 또는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퀴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개 발언을 자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첫 책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보편적 사랑이 무엇이며, 특수한 사랑이 무엇인가?’였다. 어떤 사람들에겐 내가 쓴 사랑 얘기가 ‘매우 특수하게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아주 소수의) 독자들은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쪽지를 보내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두 번째 책에서는 한없이 특수하므로 한없이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런 욕망을 바탕으로 쓰인 연작소설집이다.”

박상영은 국제적 주목까지 받았다. 한영(韓英) 문학 번역가 안톤 허가 영역한 『대도시의 사랑법』이 지난 2022년 영국 부커상 국제 부문에서 롱리스트(1차 후보작)에 올랐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서울의 화려한 밤 문화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맞는 아침을 모두 역동적으로 신나게 감동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도 이 소설집 서평을 실었다. “안톤 허가 번역한 문장은 마치 진동하면서 중독성이 있는 아이폰 화면처럼 읽힌다. 그처럼 우리 시대 성 소수자 인생의 트라우마와 황홀경의 조화를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오래간만에 박상영 작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2019년 『대도시의 사랑법』 기사를 쓸 때 5쇄(1만8천부)를 찍었다고 적었는데, 그 이후 세계적 작가가 됐으니 얼마나 더 나갔는지 궁금했다. 작가는 “현재까지 10만부가량 판매되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내가 “축하드려요”라고 문자를 날렸더니 “아이고 쑥스럽네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박상영을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현역 기자로서 기사를 쓸 때는 전화 통화만 했고, 이번엔 문자만 나눴다.
혹시나 실제의 박상영이 소설가 박상영 또는 소설 속의 ‘영’보다 덜 웃기면 어쩌나. 그렇지 않아도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인생이 더 비루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남을 유보한 채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킥킥거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박해현
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1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