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리뷰
우리 시대 무늬의 마음(文心)

- 중역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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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우리 시대 무늬의 마음(文心)

- 중역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이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에 선정된 지 3년 만에 『敬愛的心』(2023. 인민문학출판사(人民文學出版社))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팬데믹 상황과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딛고 나온 산물이라는 점에서 반가움이 더할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니 2020년 여름, 샘플 원고만으로 이 작품을 선정하면서 내심 걱정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 특유의 문체와 내공을 과연 외국어로 잘 번역해낼 수 있을까? 더욱이 이를 안받침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콘텍스트가 만만치 않았으니 말이다. 인천이라는 장소의 끈적끈적한 공기며 ‘경애’라는 이름에 각인된 호명의 문화사(586 세대에게 ‘경애’란 친구는 으레 한두 명씩은 있었다), ‘미싱’에 내포된 한국 현대사의 동역학(노찾사 〈사계〉의 비트로 대변되는) 등등 번역학 교과서상의 ‘등가성’ 문제를 한참 넘어선 난제들이 역자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출간된 『敬愛的心』을 읽어가면서 이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알려진 대로 『경애의 마음』은 마음의 존재론에 관한 이야기다. 이 점을 작가는 중국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곁을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 어쩌면 우리의 존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이 나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겠지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관계가 아닐까요.”(「중국어판 서문」)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도 저 무심히 펼쳐진 황해 바다 너머로. 여담이지만, 이 서늘한 마음들의 우주가 이 작품을 선정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어로 ‘敬愛的心’은 ‘경애의 마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 중국 독자들은 ‘경애하는 마음’ 정도의 느낌으로 이 책을 집을 것이다. 이때의 ‘경애’에는 문어적 뉘앙스는 물론 사회주의적 정치공학의 의미론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경애하는 지도자 같은) 국가라는 규칙이 작동하는 현실의 장(場)은 이처럼 마음과 마음의 공감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중국어판 서문」에서 작가는 둔황(敦煌) 여행에서의 ‘그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그 모래땅에 씨앗 하나를 여투어 둔다. “그 사막에서 나는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하고 충일했다. 그날, 나는 무언가를 거기에 떨구어놓은 것 같다.” 작가는 그것이 서책 같은 것임을 암시하는데, 나는 이를 ‘글의 마음, 무늬의 마음’(文心)으로 이해했다.

이 씨앗이 어떤 싹을 틔워낼 런지는 알 수 없다. 땅 위의 기상이 이리도 엄혹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제쯤 ‘공감’을 위한 최소한의 토양은 마련된 듯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시대 ‘일상’의 조건과 생활세계의 구조다. 작년 봄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제7차 인구 센서스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중국에서는 1억 규모의 1인 가구가 탄생한 모양이다. 저마다의 생활을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와 도시를 유동하는 군상이 바로 이들인데, 동시에 작품 속 서울과 하노이 외곽을 떠도는 21세기 중국의 ‘경애들’과 ‘상수들’이 이들이기도 하다.

“경애와 상수가 최종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간에 이미 함께 나눴던 공감대가 있었네’ 하잖아요. 그런 순간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과의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일상을 영위해나가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삶을 ‘경애’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 출간된 『敬愛的心』이, 작가의 바람대로, 두 나라 사이에 이런 마음의 생태계를 위한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 중역 『경애의 마음(敬愛的心)』은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이정옥·리우 종보의 공동번역으로 2023년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공상철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1963년생
저서 『코끼리에게 말을 거는 법』 『중국을 만든 책들』, 역서 『루쉰전집』(공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