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OO
“나 다시… 돌아갈래!!”

- 내 인생의 영화 <박하사탕>

  • 내 인생의 OO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나 다시… 돌아갈래!!”

- 내 인생의 영화 <박하사탕>

내가 만일 시한부 선고 100일을 받는다면, 죽기 전에 매일 한 편씩 보고 싶은 100편의 영화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선 내가 감독한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날들은 어떤 영화들로 채울까? 일일이 꼽아서 목록을 채워본 적은 없지만, 8할은 멜로 영화로 채워질 것 같다.

왜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거죠?

답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멜로 영화 같은 사랑을 못해 봐서 혹은 멜로 영화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서.

멜로 영화 같은 사랑은 뭐지?

나도 가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랑.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사랑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가치있죠. 인생을 살다 보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요.

전 어렸을 때 강원도 영월 깡촌에서 자랐는데, 영화관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영화란 TV를 통해 볼 수 있는 흑백영화가 전부였죠.

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흑백 브라운관을 통해 남녀가 이별하는 장면을 본 게 떠올라요. 이별하고 돌아서서 가던 남녀가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면서 영화는 끝나죠. 영화가 아니라 TV문학관이었는지도 몰라요. 아무튼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그곳에 살았으니 저는 열 살 이전에 멜로라는 감성에 눈을 뜬 거죠.

그 장면을 보니 끌림이라는 게 어떤 기분인지 갑자기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나도 저런 끌림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때 발아했는지, 발견된 건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어떤 느낌이 제 몸 혹은 마음 혹은 영혼 어딘가에 확실히 자리잡았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느낌이요,

그게 바로 살아있다는 뜻인 거죠. 끌림은 나를 살아있게 하니까요.

그리고, 끌림은 내 인생을 가치있는 인생으로 만들어주죠, 그게 순간이라 해도.

그 의미는 삶에서 대단해요. 순간이기에 더 대단할 수 있어요.

열 살 이전 어느 때인가 알 수 없는 시점에 눈을 뜬 멜로 감성은 정확히 스물일곱 살이 되던 2000년 1월 1일에 눈을 감게 돼요.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왔음을 깨닫는 그 외침과 함께요.


내 인생의 멜로 영화, 내 인생의 한국영화, 내 인생의 영화, 3관왕을 차지한 영화는 <박하사탕>이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도, 그 후 10년이 흘러 이창동 감독님을 어느 극장에서 뵀을 때도 이렇게 말했었다. 주저함이 없었다. 왜냐면,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 영화를 본 이후에도 극장을 몇 번 더 찾아 어둠 속에서 김영호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는 나를 발견했었다. 심지어 어학연수 기간에 일본에서 개봉할 때도 보러 가서 질질 짜다 왔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메아리는 내 흉통에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 영화에 너무 빠져 있어서 내 첫 단편 <독일인의 사랑>을 찍을 때 <박하사탕>의 장면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영화 개봉 후 23년이 흐른 지금, 주저함이 있다.

오늘 볼 때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고,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너무 많은 장면에서 울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눈물이 아래 속눈썹을 범람해 볼의 절벽을 따라 흐르지 못했다.

아마도, 20대 때의 김영호와 40대 때의 김영호가 같은 사람인 듯, 같은 사람이 아니듯이, 나 또한 20대의 장철수와 40대의 장철수가 같은 사람인 듯,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20년이면 강산도 두 번 변했을 시간… 요즘은 이런 말도 안 쓰지만, 강산이 1, 2년 단위로 바뀌는 느낌이라.


1999년 야유회로부터 1979년 소풍으로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박하사탕>을 대략 20년이 지나 아이패드 속 넷플릭스로 다시 봤다. 필름을 통해 영사된 빛이 스크린에 닿아 알알이 제 색깔로 맺히는 어두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봤다면 나는 눈물을 차갑게라도 흘렸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뜨겁게 흘리지 못했을까?

또 하나 궁금한 것, 김영호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야유회 장소와 시간을 듣고, 20년 전 그 장소를 찾아간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 다시… 돌아갈래!!”


김영호의 그 외침이 환청처럼 귓가를 떠나지 않았었다. 20대 때는… 지금은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 그저 시간이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 바람만 있다. 총알 탄 사나이도 아닌데, 시간은 총알처럼 내 주위를 쏜알!같이 흐르기 때문이다.


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경험을 전부 가지고 돌아간다면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마저 지운 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들, 특히 20대에서 40대까지를 보면, 실제로 필요했던 근심과 두려움보다 몇 곱절이나 과한 불안과 조바심을 태우며 인생이란 기구를 띄우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거 같다. 그것들 또한 연료가 되는 것은 맞지만 효율이 굉장히 떨어지는 연료였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젖은 낙엽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연기만 심하게 날 뿐, 화력은 약한.


스무 살의 순수한 청년 김영호가 철길 위를 보며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멈춘다.

마흔 살의 오염된 중년 김영호가 철길 아래에 널부러져,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눈물이 맺히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계속 철길을 따라 거꾸로 흐르다 여기서 멈추면서 끝난다.

원래는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는데, 영화에서는 끝점이 된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어떤 시작점이 어떤 끝점이 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반대로 끝점도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내 인생, 내 이야기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스스로도 순수하게 느껴져, 그런 순수한 내 감정까지 순수하게 좋아했던 시점을 찾으면 된다.

20년간 거꾸로 가는 이 영화의 기차에서 내가 하차했는지는 모르겠다. 돌아보면, 지나온 시간 중 대부분은 내 엉덩이를 쓰다듬는 김영호의 손에 굳어 있었고, “니가 그렇게 대단해?”라는 김영호의 외침에 똥을 싸고 있었다. 그리고 영호 부인처럼 “세민이 아빠, 세민이 아빠” 하고, 텅 빈 아파트 광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처음 탑승해 20년이 넘은 이제는, 끝점 또한 시작점과 동일함을 알기에 시작점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음을 깨닫는다. 그냥 끝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 다시… 시작할래!!!”라는 외침과 함께.

장철수
영화감독, 1974년생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은밀하게 위대하게> <하얀 까마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저서 『데뷔의 순간』(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