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욘 포세가 궁금한 당신께

  • 이 계절의 문학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욘 포세가 궁금한 당신께

매년 10월 초가 되면 문학 기자들이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는 도박 사이트가 있다. 영국의 ‘나이서오즈’다. 나이서오즈에서는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외에도 온갖 시상식을 두고 도박을 하는데 노벨문학상도 그중 하나다.

 

© Tom A. Kolstad/Samlaget   

도박의 재미는 의외성에 있다. 돈 버리는 셈 치고 약체인 ‘최애’ 팀에 베팅했다가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을 때의 기쁨과 예상치 못했던 큰 금전적 보상이 사람들을 도박판에 뛰어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문학상은 꽤 흥미로운 도박 소재다. 공식적인 후보 명단이 없어 예측이 어렵고 번역서가 한 권도 없는 무명작가가 상을 받는 등 이변이 자주 일어나서다. 작가가 아닌 정치인이나 철학자, 가수가 상을 받은 해도 있었다.

 

이번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노벨상을 안았다(올해 도박사이트는 중국 찬쉐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포세를 꼽았다). 문학 작품을 사회적 이야기와 개인의 내면을 다룬 이야기로 양분한다면 욘 포세의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포세는 죽음과 삶,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불안함, 고독과 허무, 권태와 욕망 같은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을 집요하게 다뤄 온 작가다. 포세는 2018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욘 포세의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전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뚜렷한 줄거리를 제시하지 않고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감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특유의 스타일 때문이다. 등장인물 간 갈등이 있다고 해도, 왜 둘의 사이가 틀어졌는지 자초지종을 보여주는 대신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구구절절 풀어낸다. 기승전결도 없고 반전도 없다.

 

포세의 초기작 『보트하우스』에는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멀어진 두 친구가 나온다. 30대 남자인 ‘나’는 피오로드가 있는 시골 마을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촌뜨기로, 집도 직업도 없이 부모의 집에 얹혀서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친구 ‘크누텐’이 휴가를 맞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온다. 크누텐의 아내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크누텐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1부는 화자인 ‘나’, 2부는 친구 크누텐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같은 사건이라도 인간의 기억은 제각각이고, 아무리 가까운(혹은 가까웠던) 사이라도 인간관계는 대체로 부질없다는 것을, 결국 나 외에는 타인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반복되는 문장이다. 화자는 반복해서, 직접적으로 불안감을 표시한다. “바로 이 불안감, 나는 이것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 그것이 불안감이고, 나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밖에 나간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 무언가가 날 덮쳐 오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기미가 느껴진다. 불안이 날 엄습해 오고 있다.”는 문장이 끝없이 변주된다.

 

상황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 개꿈처럼 산발적이다. “지난여름에 나는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난 내 삶에 이룬 것이 별로 없다”면서 과거를 회상하다가 돌연 “나의 어머니. 그녀가 저기 아래층에서 서성이고 있다. 어머니는 매달 연금을 받고,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며, 전기료, 전화 요금 같은 고정비용을 지불한다”고 현재 상황을 묘사하고, 바로 뒤에 “나는 내 삶에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문장을 반복하는 식으로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런 기법은 ‘나’의 머릿속을 전혀 정제하지 않은 날 것의 상태 그대로 까발린다. ‘나’의 머리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주는 것이다. 문장에도 멋을 부리지 않았다. 대부분 문장이 짧고, 주어가 생략된 구어체의 문장이 많아 소설이라기보다 희곡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노벨문학상 위원장인 앤더스 올슨이 입문작으로 추천한 『아침 그리고 저녁』은 비교적 친절하다. 멀어진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 느끼는 어색함을 집요하게 표현하면서도, 대체 왜 그들이 어색한 사이가 됐는지 설명해주지 않는 『보트하우스』와 달리 모호한 색채를 덜어냈다. 소설은 한 평범한 어부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을 뒤집는 사건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위대한 영웅이나 경악스러운 악인도 없다. 대신 삶과 죽음, 고독과 허무와 같은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인물과 배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포세의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의 난이도가 하, 『보트하우스』가 중이라면 1995년 작 『멜랑콜리아 I-II』는 ‘상’에 해당한다. 포세는 『멜랑콜리아 I-II』에서 실존 인물인 19세기 노르웨이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사와 허구를 섞였다. 이야기는 헤르테르비그의 시점과 3인칭 시점,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역사와 허구가 섞인 데다 시점(視點)과 시점(時點)이 끊임없이 교차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다만 평론가들은 『멜랑콜리아 I-II』를 포세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일간지 아이리시타임스는 “욘 포세의 문학적 지향, 서술 기법, 비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라고 『멜랑콜리아 I-II』를 소개했다. 포세는 이 책으로 노르웨이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순뫼레 문학상과 ‘노르웨이어를 빛낸 가치 있는 작품’에 수여하는 멜솜 문학상을 받았다.

홍지유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1989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