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팬은 소비자인가, 생산자인가, 혹은 주주인가?

  • 기획특집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팬은 소비자인가, 생산자인가, 혹은 주주인가?

팬덤은 언제나 가변적인 존재였다. 대중문화가 ‘움직이고 살아 있는 주체들의 문화적 형식과 실천’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일반 소비자로 인식되던 팬들이 음반 판매 과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줄이자며 환경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자선 기부캠페인을 독려하다가, 어느 날에는 인종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팬들은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다양한 문화실천을 보여 왔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팬덤은 그들을 하나로 규정하려는 사람들의 손에 잡히지 않고 미끄러진다. 이것이 팬 문화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말하자면, 팬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러한 팬덤의 변화 지점 중 가장 대표적인 전환점은 오늘날 팬 활동이 ‘생산’의 영역까지 확장한 것일 테다. 과거 소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팬들은 이제 생산 단계에 직접 참여하며 영향력을 드러낸다. 자신을 기획자로 위치 지으며 (산업에)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직접 스타의 탄생을 기획하고 양육한다. 이러한 전환점을 추동했던 힘은 팬들의 ‘참여’ 욕구였다.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가 참여 문화(participatory culture)를 이야기하듯, 디지털 시대의 수용자는 미디어의 해석, 전유, 변형, (재)유통 과정에 참여하며 콘텐츠의 생산에 기여한다(Jenkins, 2003).

 

미디어의 역할이 ‘플랫폼’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이러한 참여 욕구와 실천은 더 중요해졌다. 플랫폼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획자’ 정체성을 형성한 팬들이 미디어 플랫폼에서 보이는 주체적인 가치 판단과 그에 따른 새로운 소비 방식은 오늘날 3세대 팬덤의 특징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팬들이 보이는 이른바 ‘소비자 행동주의’는 소비, 홍보, 유통, 평론, 전략, 기획, 사회적 운동에 이르기까지 팬 문화를 넘어 정치·경제적으로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팬덤의 경제적 영향력이다. ‘팬더스트리(Fan+Industry)’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팬덤은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경제의 한 축이 되었다. 특히 팬덤은 ‘산업’ 사회의 대중문화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1)이기 때문에 팬 문화는 문화산업의 상업적 이익과 연관된다(Fiske, 1992/1996). 이러한 특징은 팬덤의 양가적인 측면을 드러내는데, 하나는 팬덤이 적극적인 소비자 권리를 통해 사회운동의 전초가 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적극적인 팬 실천이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팬덤을 긍정하고, 팬덤이 영향력을 보일수록 팬덤은 하나의 프로필성(性)으로 인식되어 소비 트렌드로 흡수되거나, 상품기획에 더욱 깊이 연관되고 포섭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짐작할 수 있듯이, 플랫폼 환경은 이를 가속한다.

 

팬덤 플랫폼은 대표적인 팬덤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데, 굿즈 판매와 같은 커머스 서비스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연, 온라인 팬미팅, 독점 콘텐츠부터 팬과 스타의 일대일 대화 등 개인화된 소통 서비스까지 아우른다. 디어유 버블(bubble)과 위버스(Weverse)를 필두로 최근에는 라이브 채팅 기능을 더한 ‘프롬(fromm)’이나, 질의응답 기능을 탑재한 ‘비스테이지(b.stage)’와 같은 신규 서비스까지 등장하며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3세대 팬덤은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확장한 동시에 주체성과 기획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팬과 스타의 관계가 새롭게 형성된다. 이전보다 쌍방향 소통에 가까워지고 있는 팬덤은 애정을 기반으로 스타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피드백을 요구한다. 즉, 팬과 스타의 관계는 친밀성을 기반으로 점점 더 수평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이때 플랫폼은 팬과 스타의 상시 소통을 매개하며 스타의 일상을 더욱 친밀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에 팬덤 산업의 중요한 동력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팬을 ‘무보수 크리에이터 집단’으로 규정하는 증권가 애널리스트의 분석(이혜인, 2022. 4. 4)은 팬덤의 생산성(productivity) 측면에 다시금 주목하게 한다. 이를테면, 팬덤은 앨범을 구매하고 콘서트에 가는 것 이외에도 자신이 선호하는 아티스트를 알리기 위해 브이로그 영상을 만들고, 광고를 띄우고, 굿즈를 제작하거나, 직접 생일 파티를 주최한다. 이러한 2차, 3차 생산물들은 팬들이 무보수로 만들어 내는 자체 창작물로 다른 팬들의 ‘입덕’ 계기가 되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비활동기에는 직접적인 팬 활동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팬덤을 활성화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콘텐츠 제작과 활발한 공유(유통)는 무보수로 이루어지는, 즉 선물 증여(gift giving) 방식으로 작동하는 선물 경제(gift economy) 체제이다. 앞선 보고서에는 이러한 팬덤의 무임 노동 문제를 지적하면서, 팬들에게 생산성에 대한 반대 급수로 보수를 주거나 혹은 의결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무임 노동 문제는 기존 학술 장에서도 많이 거론됐던 면이 있지만, 팬덤을 엔터테인먼트사의 거대 무형자산으로 전망하는 ‘증권가’ 보고서에서 이러한 논의가 나왔다는 점과 그로 인해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팬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팬덤에게는 이윤 추구에 대한 강한 불신이 존재하고 있고(Fiske, 1992/1996), 보수를 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팬들의 생산 활동은 즐거움이 동력이 되는 자발적인 문화실천이다. 그렇다면 ‘의결권’에 집중해 보자. 2023년 초, 증권가는 이른바 SM 인수전으로 뜨거웠다. SM의 오너리스크에서 시작된 경영권 분쟁은 카카오와 하이브라는 거대 자본이 뛰어들면서 연일 화제가 됐다. ‘하이브-이수만 vs. SM경영진-카카오엔터-얼라인’의 대결구도에서 이들 ‘자본’의 싸움은 ‘가치’(팬과의 상생, 아티스트의 성장, 케이팝의 발전, 글로벌 산업으로의 가능성 등)의 싸움으로 전이됐다. 그 과정에서 문화산업의 당사자인 팬덤과 아티스트는 텅 빈 기표로만 언급되었고, 소외된 측면이 있다(이동연, 2023. 3. 3). 최근 불거지고 있는 SM 주가 관련 뉴스들은 이를 더 잘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한 팬덤의 특성인 ‘참여’는 결국 팬과 스타 사이의 ‘거리감’에 따라 형성된다. 팬과 스타의 상호작용, 동일시, 권능, 관계 등의 능동성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참여형 팬덤이라면, SM 경영권 분쟁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는 감각은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몇몇 팬들은 소외되지 않고, 목소리를 내며,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보호하기 위해서 소액이라도 주주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듯하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하고도 접근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결권을 갖고자 하는 움직임, 즉 의결권을 행사하는 소액주주 혹은 주주행동주의는 팬덤 저항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의사결정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새로운 ‘참여’ 방법으로서 말이다.

팬 의결권은 금융화 자본주의 환경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팬덤 문화의 중요한 축인 엔터테인먼트사와의 권력관계에 ‘주주’와의 관계성이 추가되는 구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덤 리스크는 주가와도 결부되며, 반대로 팬 정체성이 산업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고려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주주가 된 팬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움직임은 피드백 운동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오늘날 팬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 특히 3세대 팬덤에게 아이돌은 ‘나’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하나의 팬 대상이다. ‘A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발화하는 수많은 문화정치는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아티스트의 신념과 가치를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팬덤이 사회운동에 동참하는 측면이 컸다면, 오늘날에는 팬덤의 발언이 선행되기도 하며, 아티스트의 정치적 발언(그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주기를 요구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그 스타덤의 반대급부에 있는 ‘팬덤’의 정치적 발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팬덤이 아티스트를 둘러싼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사와 더불어 하나의 큰 권력 축으로 인식되는 구도에 주주라는 금융화 테제가 추가된다면, 보다 복잡해진 팬덤문화는 어떻게 재편될까? 앞서 팬덤의 참여에는 두 가지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의결권 획득은 팬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문화산업의 상업적 이익과 연관되는 또 다른 금융화의 흐름일까? 아니면 능동적인 팬 활동의 새로운 가능성일까? 나아가 형성된 ‘팬 자본’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까? 팬들의 활동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계속 지켜볼 문제다.


1) 특히 이 부분에서 등장하는 모든 단어는 각각 팬덤의 특수한 위치와 현상을 만들어 낸다.

참고문헌 -
Fiske, J. (1992). “The Cultural Economy of Fandom.” 팬덤의 문화 경제학. 손병우 (역) (1996). <문화, 일상, 대중: 문화에 관한 8개의 탐구>. (pp. 187~209). 서울: 한나래출판사.
Jenkins, H. (2003). “Quentin Tarantino's Star Wars?: Digital Cinema, Media Convergence, and Participatory Culture.” In David Thorburn and Henry Jenkins (eds.), Rethinking Media Change: The Aesthetics of Transition. (pp. 281~312). Cambridge: MIT Press.
이동연 (2023. 3. 3). “SM 경영권 분쟁의 구조적 이해”. . 문화연대-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 토론회. 서울.
이혜인 (2022. 4. 4). “2022 엔터 르네상스의 시작: K-POP 산업 재도약”. 유안타증권 미디어/엔터 산업분석 보고서.

신윤희
대중문화 연구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박사과정, 1991년생
저서 『팬덤 3.0』 『페미돌로지』(공저) 『인문잡지 한편: 콘텐츠』(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