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 최진영 장편소설 『구의 증명』

  • 오늘의 화제작
  • 2023년 겨울호 (통권 90호)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 최진영 장편소설 『구의 증명』

 

혹시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존재 사이의 얽힘과 감응, 그로 인해 달라지는 선택들과 삶의 실존적 변화를 고작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일축해도 되는 것일까?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은 우리가 빈번히 호명하는 ‘사랑’에 대한 문제제기다. 가령, 사랑이라는 말은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가? ‘나’의 욕망, ‘너’를 아끼는 마음, 그리고 ‘우리’의 함께 있음… 물론, 구와 담의 관계에 가장 근접하는 지상의 단어는 분명 사랑이지만 또한 결코 사랑만은 아니기에 이러한 명명은 불충분하다. 둘의 관계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아득함을 초과해버린다. 그들의 ‘사랑’은 인간의 존재 증명을 마련하는 최초이자 최후의 힘이다. 사랑이면서도 사랑만은 아닌 이것은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이 완성되기 바로 그 이전의 토대,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의 자격 요건을 심문한다. 요컨대 『구의 증명』은 사랑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그 너머의 영역을 탐문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소설에 따르면, 이를 위해 ‘나’의 인간됨을 ‘네’가 확인하고 증명해주는 절차가 필요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말이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독자는 탄식을 거듭한다. “이것이 과연 삶이란 말인가?” 삶은 불공평하다. 이는 너무나 익숙한 문장이지만 구의 삶을 따라가는 독자는 이것이야말로 삶이라고,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구(●)와 담(○)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은 삶은 불공평하다는 문장을 발설할 수 있다는 것조차 특권적이라는 뼈아픈 사실 또한 함께 수신한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은 부정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이며, 그들의 인생을 점철한 극단의 부조리는 그들에게 안온한 죽음이라는 탈출구조차 마련해주지 않는다.

 

담이 구의 몸을 괴롭게 뜯어 먹는 것으로 그의 장례를 치러야만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일 테다. 담이 먹어버림으로써 사라진 구의 몸은 그를 사망자가 아닌 실종자로 만들 테고, 담을 제외한 그 누구도 구의 죽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구의 살과 내장을 먹음으로써 담은 그의 죽음을 배타적으로 소유한다. 담이 구를 먹는 행위는 인간의 몸이 다른 인간의 몸을 제 내부로 섭취함으로써 그가 인간이었노라고 악착같이 증명해내는 과정이다. 구가 살아낸 삶의 대부분의 순간은, 담과 함께일 때와 진주 누나의 방에서 살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쫓기는 자의 시간이었다. 자신 또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엄한 한 개인임을 제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여야 했던 생존의 시간이었다. 그의 생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결국 실패했고, 담이 그의 뼈와 살을 발라 입 안으로 넣을 때에서야 한 인간이 된다. 담이 먹은 것이 인간의 몸이 아니라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막다른 순간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그의 인간됨은 증명된다. 문명화된 인간 사회가 최악의 야만으로 간주하는 식인을 통해 한 인간의 인간성이 가까스로 입증된다.

어른들과 사채업자, 빚, 공장, 그리고 학교마저도 그들에게는 안전한 공간이 아닌 이 세계는 폭력적이라는 서술 이전에 이미 폭력 그 자체다. 어린 연인들에게 그러한 무뢰한들이 침입하도록 기꺼이 허하는 것은 바로 돈과 가난이다. 돈에 관한 문제는 늘상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의 힘으로 소급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운용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인간적’인 것은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활동은 이해관계를 기준 삼아 선택적으로 실행된다. 세계는 개인의 ‘좋음’을 최대화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을 것을 권하고 윤리와 공동체는 그것의 실천을 합리화하는 마지노선으로 재정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와 담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비극을 우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받아드는 잔인한 진실이라고 납득해 버릴 것인가, 혹은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그러한 인간성에 대하여 반기를 들 것인가, 하고 말이다.

 

구에게 담은 연인 또는 사랑 그 이상의 이름이다. 각자의 인간됨을 증명해주는 유일무이한 배타적 존재자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두고 감히 사랑이라 쓸 수 없다. 인간의 인간됨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발생하는 자질이 맞지만, 그리고 사랑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켜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를 끝내 사랑이라 부른다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유실하고 말 것이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아는 사랑에 대입할 수 없는 값이다. 그러니 슬프다거나, 처절하다거나, 아름답다는 말은 과감히 버리도록 하자. 오직 두 개의 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우리에게 남는다. 지금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인간다운 삶이냐는 소설의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사랑에 관한 말은, 적어도 그 후에라야 겨우 가능할 테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구가 말했다.

뭐든 상관없어.1)

1) 최진영, 『구의 증명』 (리커버판), 은행나무, 2023, 160쪽.

전승민
평론가, 1990년생
평론 「통증과 회복의 인간학─양자역학으로 읽는 한강」 「포르셰를 모는 레즈비언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게이에 관하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