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을 향한 길은 두 갈래로 보인다. 하나는 기계화 되어가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화 되어가는 기계이다. 두 길은 서로 가속도를 경주하고 있다. 인간은 초능력을 꿈꾸고 기계는 인간을 꿈꾸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질수록 악당을 물리치는 <6백만 불의 사나이>나 <슈퍼맨>을 보며 열광한다. 영화나 소설 속의 상상은 대체로 현실로 내려와 자기실현을 모색한다. 미국의 군수업체 록히드 마티사가 제작한 ‘헐크’ 덕분에 병사들이 90km 장비를 메고 시속 5km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초능력은 기계의 도움에 의존하는 단계에 그치지 않는다. 수명, 면역력, 근육, IQ, EQ 등을 증가시키는 줄기세포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물학적 변형이 시도되고 있다. 인간의 기계화는 물론 생명공학 기술까지 합세하여 AI시대 초인의 길을 인도하고 있다.
한편, 기계의 인간화 되기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1976), <터미네이터>(1984) 계열에서 실감나게 드러난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는 이른바 ‘로봇 3원칙’이 반복해서 나온다. 1)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2)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한다. 3)로봇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 원칙은 오늘날 과학자, 기술자, 일반인 모두가 질문하는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AI의 통제 불가능한 자가 발전의 특이점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듯, 포스트휴먼에서 생명과 기계의 전통적 구분은 해체된다. 예술적 상상력 역시 인간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오늘날 AI는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창작자로서의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인간의 창작물을 변형하거나 모방하는 방식의 신경 알고리즘을 넘어 AI 딥드림, AI와 신경과학의 ‘새 개념 예술’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AI 딥드림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의 뇌에 입력된 이미지가 심층신경망의 은닉층을 지날 때 일어나는 이미지 전개 양상을 감지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개발자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확인한 심층신경망에 나타난 이미지를 그림의 소재로 응용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이미지 속에 내재하는 다양한 형상들을 찾아내고 이를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AI 딥드림은 인간의 초현실적인 무의식의 감각화에 도전한 것이다. 이미 AI의 딥드림 작품이 2016년 이래 미국 샌프란시스코 화랑에서부터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다.
또한, ‘AI와 신경과학’이 만난 ‘새 개념 예술’은 AI 자체의 예술 창작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AI는 인간의 ‘상상의 망’에 해당하는 ‘인공신경망’을 신경과학적 관점으로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인공신경망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상상의 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상의 망’을 통해 자기 재생산을 전개해낼 수 있다. AI가 인공신경망을 통해 만든 예술은 인간이 지금까지 축적했던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무한의 영역으로 향한다. AI가 인간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인간에게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가능할 수 있게 한다.
포스트휴먼 예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려움과 설렘의 양가성이 공존한다. 포스트휴먼의 정체가 ‘인간의 AI일까?’ ‘AI의 인간일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우화가 떠오른다. “신이 강철을 창조하자 나무들은 공포에 떨었다. ‘저 강철이 톱과 도끼가 되어 우리를 모두 잘라내면 어쩌지?’ 신은 나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걱정말라, 그대들이 도끼자루가 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으려니.’” 챗GPT 등 생성형 AI 혁신이 거듭되면서 새삼 떠오르는 시사적인 우화이다. 문제는 AI와 인간의 상호 협력과 보완 관계이다. 예술은 기술의 힘으로 기술은 예술의 창조성으로 서로 소통하며 발전하는 것이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과 AI가 함께 지향해야 할 과제이고 목표이다. 여기에 우리 미래 예술의 무한 낙관과 비관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