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식당’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처럼 저절로 ‘김밥천국’이 떠오른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나 역시 여기에 시 형식으로 적어보겠다.
내가 가장 많이 찾았던 식당 김밥천국, 지금도 가끔 늦은 시간에 혼자 찾아가곤 하는 김밥천국, 경기도 일산에 살 때부터 종종 주말엔 찾아가던 김밥천국, 십오 년 전 광주광역시에 내려왔을 때 제일 먼저 동네에서 발견한 식당 김밥천국, 그래서 마음 놓였던 김밥천국, 떡라면이 삼천 원이고 김밥 한 줄이 천 원이었던 시절부터 찾았던 광주의 김밥천국, 맛집 많은 광주에서도 여봐란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밥천국, 지금은 떡라면이 오천오백 원 김밥 한 줄은 삼천 원이 된 김밥천국,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처가에 올라가면 당당히 찾아갔던 김밥천국,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던 김밥천국, 여름이면 ‘콩국수 개시’라고 커다랗게 적어놓았던 김밥천국, 겨울엔 팥죽도 따로 팔던 김밥천국, 메뉴가 아브라함의 자식만큼이나 많은 김밥천국, 늘 YTN이 켜져 있는 김밥천국, 저녁엔 기아타이거즈의 프로야구 중계에 채널이 맞춰져 있는 김밥천국, 한화 팬인 내가 눈치 보면서 밥을 먹었던 김밥천국, 하지만 한화가 늘 져서 마음 편하게 떡라면을 먹을 수 있었던 김밥천국, 돈가스 먹던 아저씨가 고기 써는 나이프를 들고 행패 부렸던 자정의 김밥천국,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저씨가 포크 들고 같이 맞붙었던 김밥천국, 그걸 보면서도 계속 돌솥비빔밥을 먹던, 의연한 고등학생이 있던 김밥천국, 나는 누구보다 재빠르게 도망쳐 나왔던 김밥천국, 보험회사 직원이 방금 나온 떡만둣국 앞에서도 상담 전화를 끊지 못했던 김밥천국, 택배회사 직원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스페셜 정식을 먹던 김밥천국, 참치 횟집에서 회식하고 난 후에도 찾았던 김밥천국, 참치 횟집보다 더 편하고 속이 풀리는 것 같았던 김밥천국, 새벽 세 시에 찾아가면 단체주문 김밥이 은박지 포일에 싸여 피라미드를 이루던 김밥천국, 주방에 세 명 홀엔 한 명 일했던 김밥천국, 주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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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오 분 안에 다 나오는 김밥천국, 젊은 남자 사장이 김밥도 말았다가 배달도 나갔다가 홀 청소도 했다가 바삐 뛰어다녔던 김밥천국, 사장이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외식조리 최고위과정 졸업했다고 홀 안에 크게 아크릴판 약력을 만들어 걸어두었던 김밥천국, 코로나 땐 밤 아홉 시까지 장사했던 김밥천국, 코로나 이 년 차에 사장이 바뀌었던 김밥천국, 사장이 바뀌어도 메뉴는 그대로인 김밥천국, 쓰던 장편소설이 엉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찾았던 김밥천국, 단편소설 원고 넘기고 넋 나간 상태로 찾았던 김밥천국, 예술원 회원들 비판하는 소설 썼다가 발신제한 욕설 전화 받고 찾았던 김밥천국, 이상문학상 거부하고 상금이 계속 메뉴판에서 아른거렸던 김밥천국, 아제르바이잔에 출장 갔다가 돌아온 후 어후 그래 이 맛이야 혼자 웅얼거렸던 김밥천국, 팔십 넘은 아버지가 쓰러져 강원도 원주까지 차를 몰고 갔다가 돌아온 후 멍한 표정으로 찾았던 김밥천국, 장모님이 코로나 의심환자로 여러 병원 전전하다가 겨우 간신히 한림성심병원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한시름 놓고 찾았던 서울의 김밥천국, 거기도 맛이 다 똑같았던 김밥천국,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작업실까지 걸어가다가 늘 지나치던 김밥천국, 건강이 예전만 못해진 걸 느끼면서 떡라면과 김밥부터 끊어야겠다고 결심한 김밥천국, 그래도 또 금세 잊고 찾았던 김밥천국, 중학교 2학년 아들과 말싸움하고 가출한 뒤 찾았던 김밥천국, 아내와 아이들에겐 혼자 찾아가는 걸 숨기던 김밥천국, 우연히 거기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던 첫째 아이와 만났던 김밥천국, 그게 왠지 부끄러웠던 김밥천국, 첫째 아이와 함께 앉아 먹으니 웬일인지 그 맛이 나지 않던 김밥천국, 초등학교 아이 두 명이 고심 끝에 쫄면과 라볶이를 시킨 후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 씨 졸라 매워 욕하는 걸 지켜봤던 김밥천국, 예전엔 자판기가 무료였던 김밥천국,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들고 택시 기사 아저씨와 함께 오랫동안 어닝 아래 서서 비 내리는 거리를 지켜봤던 김밥천국, 한때는 베트남 젊은 친구가 홀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김밥천국, 그 친구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함께 주방 앞까지 가서 주문했던 김밥천국, 교회 청년부 친구들이 회식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김밥천국, 그 친구들이 돈가스 앞에서 경건히 기도 올려서 나까지 덩달아 경건히 기다리던 김밥천국, 그만큼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가 가까운 김밥천국, 붉은색 인조가죽 의자가 놓인 김밥천국, 일 년 전부턴 김밥천국에서 김밥나라로 상호명이 바뀐 김밥천국, 그래도 내겐 여전히 김밥천국인 김밥천국
어디에나 있는 김밥천국
혼자인 사람에게 눈치주지 않는 김밥천국
천국에 갈 땐 그 누구인들 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김밥천국
내가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된 뒤에도 계속 그곳에 남아 있기를
그래서 또 누군가의 인생식당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