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리뷰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시를 쓰는 방법

- 일역 김연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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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시를 쓰는 방법

- 일역 김연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2020년)의 일역 『일곱 해의 마지막(7年の最後)』이 신천사(新泉社, 2023년 11월 30일)에서 하시모토 치호(橋本智保) 역으로 간행되었다. 역서를 출간한 신천사는 이 책에 대해 “쓰지 않음으로 문학을 성취한 백석”, “북한에서 시인으로서의 길이 차단된 백석의 후반생을 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부활시킨 장편”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 비평가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북한의 체제 가운데 결국 시를 쓸 수 없음을 통해 자신의 문학을 완성한 시인의 마지막 7년간의 이야기”로 소개한다.

북한의 체제라고 할 때 현대일본에서는 고착된 이미지가 있다. 이 비평가는 “단 한 사람 권력자의 상상력으로부터 나오고 현실에서는 단지 하나만 정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가난한 세계라고 하는 것을 문학은 알고 있다. 시는 알고 있다. 때문에 자기가 비대해진 가난한 상상력은 시를 죽이고 문학을 소멸 시킨다”라는 일갈을 통해 풍성한 상상력의 대치점에 있는 북한체제의 현실을 고발한다. 나아가 기행의 ‘쓰지 않는 문학 활동’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시를 쓰는 방법’이 된 기행의 문학적 자세에 대한 깊은 공명인 것이다.

시인의 내면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이 단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날마다 그 죽음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하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고 작중에서 벨라는 말했다. 1956년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이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다시 시를 쓰게 되었지만 결국 1962년에 「나루터」라는 마지막 체제 찬양시를 끝으로 표현활동을 중단한 시인에게 있어서 벨라의 요구는 무산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 작품은 시인의 침묵이 오히려 죽어가는 단어들과 대면한 시적 활동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중 기행이 삼수의 관평리 독골에서 지내면서 이전에 자신이 썼던 금지된 시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다시 적는 장면이 있다. 전에는 밤새가며 노트에 남길 생각으로 시를 썼지만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불태워버리려고 쓴다. 시인의 시작 행태가 완전히 변모한 것이다. 원하기만 한다면 평생에 써온 시들을 노트에 옮겨 쓸 수 있지만, 그러한 시적 행위도 결국은 타오르는 난로에 찢어버리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언어로 표현되는 시적 행위는 아무리 풍성한 수사로 치장된다고 하더라도 시인의 깊은 고독과 시적 세계를 전부 담을 수 없다. 오히려 표현되는 그 순간에 시적 생명력은 사라지고 만다. 백석 시인을 다룬 이 작품이 일본에서 이러한 경향성을 갖고 수용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한국인에게조차 가려져 있었던 시인의 흥미로운 면모가 상상을 통해 일본에 소개되었다고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세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한 시인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역자는 일본의 대학에서 조선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의 유학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많은 한국작품을 번역한 전문가이다. 김연수 작가의 작품도 두 작품을 번역한 실적을 가지고 있어서, 작가의 문체나 의도, 특성 등을 충분히 파악하여 부족함 없는 무난한 번역을 했다. 작품 중에 표기되는 지역명을 한자로 정확히 표기하였고, 책 앞부분과 뒷부분에는 일본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조 자료를 첨부하였다. 앞부분에는 주요 등장인물을 간략히 소개하고 작중에 등장하는 실제 문학가들을 조사하여 간단히 수록하였다. 뒷부분에는 편주를 두어 난해한 용어에 대한 해설을 첨가하여 책의 입체적인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역자후기에 이르러 작가의 일반적인 소개와 대표작품, 그 특성에 대한 상세한 설명뿐만 아니라 『일곱 해의 마지막』의 상세한 해설도 덧붙였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이 해설을 접하고 나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욱 용이할 것이다.

무엇보다 김연수 작가가 본 작품을 쓰게 된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한 부분은 작품의 이해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작품 중에 옥심이 기행에게 내민 노트의 여백에 쓰인 시에 대한 역할 인식이 작가정신과 일치한다고 역자는 말하고 있다. 시대의 눈보라 앞에서 시는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지만 잠시나마 타오른 불꽃을 통해서도 시의 언어는 미래의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렇듯 백석의 꺼져버린 시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여전히 전달된다고 역자는 보고 있다. 백석과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좋은 번역으로 이어진 것이다.

 

※ 일역 『일곱 해의 마지막』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하시모토 치호의 번역으로 일본 신천사(新泉社)에서 2023년 출간되었다.

박상도
서울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1970년생
저서 『일본 문학 속의 기독교』(공저) 『문학, 일본의 문학』(공저), 역서 『습유와카집』(공역) 『후습유와카집』(공역) 『금엽와카집/사화와카집』(공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