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 구멍 난 양말을 하나 더 보여주는 기분.
아무리 기워도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나는 내 양말. 그만두고 싶다.
묘지가 보인다
꿈에서 보던 공동묘지
이제 눈을 떠도 잘 보인다
우리 집은 묘지가 보이는 아파트
커피 한 잔 내려서 창가로 가면 땅 위로 드러난 봉분들
오늘은 구름이 잔뜩 꼈지만
날이 좋으면 어디까지 보일까?
내 이름을 새기는 이의 팔뚝과
이마에 맺힌 땀 한 방울
눈앞에 아른거린다
누구는 조상복합이네 e편한저세상이네 말하지만
어차피 한 번 가야 할 곳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사는 게 조금씩 좋아진다
적당히 일을 하고 쉬는 날 산책을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푸근하다
아직 바람이 차서 두드리면 문을 열어줄 것 같아
지갑이 얇은 투숙객의 마음으로
모르는 사람들의 땅을 걷는다
또 왔군요 죽고 싶나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꽃 한 송이 빵 한 조각에도 인사를 해주는 아내
함께 자리에 누우면 여기가 꼭 내 무덤 같다 죽어도 좋다
상몽
복권을 샀는데
꽝이 나왔다
꿈에서 산 것조차 꽝이라니
운이 없구나 생각할 무렵
잠에서 깼다
창밖 놀이터에는 나무들이 서 있고
바람에 운세를 점치는지
오늘은 조금 흥분한 모양
나는 두꺼운 점퍼를 꺼내 입으며
간밤의 꿈을 떠올려 보지만
복권집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처럼
어제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하루만 먼저 다녀올 수 있다면
뒤집힌 이 양말부터 바로 신자
나는 미리 외운 번호로 부자가 되겠지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어서
밤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내일의 사고를 방관한 죄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복권을 샀는데
오늘도 꽝이 나왔다
하나도 안 맞아
너는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말했지만
하나는 맞았잖아
나는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네 손을 붙잡고 있다
이게 꿈이 아니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