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위 패스포트
몹시 하트하트

  • 노트 위 패스포트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몹시 하트하트

앙카라 성의 석양

 

바깥 온도가 1도 높아졌다. -45도. 나는 날고 있다. 개인 모니터의 화면은 현재의 항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시해준다. 세계가 모두 담기는 크기였다가, 점점 좁아져서 저 아래 호수나 바다의 이름을 간판처럼 내걸었다가, 다시 많은 지명들을 은하수의 별처럼 흩뿌려놓는다. 이런 화면은 열두 시간 내내 봐도 질리지 않는다. 지도는 또 규모를 바꾼다. 낯선 지명들이 마치 뾰족한 부분을 위로 내밀고 누운 압정처럼 보인다.

오래전 터키항공에서는 기내식 트레이 위에 촛불을 하나씩 올려주었다. 정확히는 촛불 모양의 작은 전구를. 그때나 지금이나 항공사가 탑승객을 위해 하는 소소한 연출을 발견하는 건 늘 흥미롭다. 에바항공이 주는 트럼프 카드라던가 러시아항공이 주는 포춘쿠키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렇게 놀이적인 요소가 담요나 슬리퍼 같은 기능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이런 장식과 연출에 잠시 마음을 주면서 수천 피트 상공을 견딘다.

이 비행기 안에서는 화장실 표시등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표시등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거울과 세면대가 어딘가 앙증맞게 느껴져서다. 덕분에 그 불빛을 바라보는 게 즐거운 놀이가 된 셈이다.

기내 좌석 배치는 3-3-3 형태. 사람들이 이런 모양으로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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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덩어리였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앞이 막힌 걸 피하고 싶었던 첫줄 사람들만 촘촘히 앉아있고, 그 뒷줄부터는 빈 자리가 많아 좌석 세 개를 한 사람이 차지하는 ‘눕코노미’도 가능한 상황. 기내 인구밀도가 낮다는 것이 탑승객에겐 행운일 수도 있겠지만, 추가금을 주고 일부러 발 뻗을 공간이 넓은 좌석을 선택한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니은 자로 앉아서 축하 인사말을 다듬는다. 19회 앙카라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낭독할 원고다.

‘(…) 앙카라국제도서전이 우리에게 아주 다정하고 특별한 불빛이기를 바랍니다./ 2023년의 우리를 넘어서 3023년의 우리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천 년 후의 사람들이 종이책의 물성에 매료되는 상상을 가끔 합니다./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방전될 일도 없고,/ 비에 젖을 수 있지만 잘 말리면 한 장 한 장 더 단단해지고,/ 무엇보다도 책을 펼치는 행위가/ 문을 여는 행위와 아주 닮았기 때문에/ 미래의 우리는 종이책의 물성에 더 매료될 것입니다./ 2023년 이 축제에 초대된 작가로서 저는 감히,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천 년 후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

 

첫날에는 개막식에 참여하고, 이튿날에는 북토크와 사인회를 했다

 

이틀 후 축제 현장에서 이 문장들은 소리가 되었다. 두 개의 언어로 흘러나갔다. 내가 통역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순차 통역보다는 동시 통역을 선택할 것이고 그건 아무래도 시간 공백을 줄이고자 함일 텐데, 이날 나는 순차 통역의 매력을 발견했다. 무대에서, 통역이 되고 있던 그 순간에 말이다. 내 입에서 떠난 말이 다른 말로 변환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치 미래에서 온 여행자처럼 서 있었다. 사람들이 잠시 후 어떤 말에 도달하게 될지 몇 초 먼저 아는 사람, 그러나 절대 미래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 과묵한 여행자로.

인사말의 어느 구간에서 청중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러자 욕심이 났다.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조금 더 끌어냈어야 하는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내게서 떠난 말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 닿았는지 꼼꼼히 확인하고픈 마음이 되고 있었다. 그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안이었지만 분명한 기우이기도 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눈길이 닿는 것 모두에 반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활기차고 열정적이었으니까.

자리로 돌아오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이 하나둘 내게로 포르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직 행사는 끝나지 않았고 무대에서는 축하의 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도, 아이들은 무대 앞 1열로 와서 옹기종기 무리를 이루었고, 사인해달라며 종이와 연필을 내밀었다. 누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네모반듯한 종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친구 노트에서 막 뜯어낸 듯한 자투리 종이를 내미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 최선을 다해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 아이의 수줍은 몸짓, 그 황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나는 정신없이 사인을 했다.

 

청사초롱이 걸린 한국관

『밤의 여행자들』 북토크. 진중한 질문들로 가득한 뜨거운 자리였다.

 

행사장에서 빠져나올 때는 눈인사를 건네거나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겨우 차량에 올라탔는데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없네? 뒤돌아보니 이번 여정에 동행한 남편 L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사인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나는 아니야, 저는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그런 건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 역시 곧 천진하고 명랑한 종이의 행렬에 휘말려 ‘사랑해요’ ‘고맙습니다’와 같은 말을 또박또박 적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후에는 신용카드 서명하듯이 정말 빠른 속도로 휘릭휘릭 쓰게 됐다고. 갑자기 스타가 된 듯 어리둥절한 L을 차에 태우고 우리는 앙카라의 저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받아 갔던 종이 위의 말들은 최종적으로 어디에 안착했을까? L과 나는 그것에 대해 가끔 얘기한다. 행사장을 벗어난 후 포르르 날아가지 않았을까, 나비처럼? 집까지 동행한 후 며칠 함께 머물다가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지거나, 꽃처럼? 분명한 것은 그날의 왕성한 환대가 아이들의 기억에서 휘발된 후에도 우리에게는 남아있을 거란 점이다. 책갈피처럼, 표시해두고 싶은 페이지로.

 

튀르키예 한국문화원의 문진평 실무관 말에 의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고 한다. 문화원 직원들과 마주친 시민들이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사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런 관심 속에서, 19회 앙카라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서 한국관 부스는 행사 후 허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청사초롱 아래 한국문화원 직원들은 한복을 갖춰 입었고, 내 소설 『밤의 여행자들』의 튀르키예어판 200권도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그 아름다운 청사초롱 아래서 사인회를 했다. 한국문화원 직원들이 튀르키예 독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한국어 발음으로 옮겨 적어주었다.

 

그 메모를 참고해서 책에 사인을 하고 독자와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느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두 시간쯤 더 하라면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인은 손 근육을 써서 하고 사진 찍을 땐 얼굴 근육으로 웃지만 그게 다는 아니고 기분! 기분의 지구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K-하트랄까 그런 포즈는 내게 좀 쑥스럽지만, 능숙한 튀르키예 독자분들과 함께 나도 결국 볼하트 대열에 합류했다. 아니, 결과물로 남은 사진을 보면 합류 정도가 아니라 몹시 하트하트였다.

 

 

미술관과 박물관.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들.

『밤의 여행자들』의 튀르키예어 번역가 데리야 첼릭(Derya Celik)은 일정상 이번 축제에 오지 못했지만,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이메일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데리야 첼릭은 번역가로서 이 소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떠했는지, 어떤 부분이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고 어려웠는지, 또 어떤 질문에 사로잡혔는지 등을 말해주었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진짜 재난이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재난 이후의 상황입니다.

 

 

 

 

 

점심 산책 풍경. 개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하며 만티를 먹으러 갔다.

천천히 걸으며 오늘의 해를 보냈다.

 

그때 삶과 죽음이 또 한 번 갈리니까요.”라는 문장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 독자들에게 더 밀착되었을 거라고 했다. 비슷한 얘기를 튀르키예 출판사 편집자, 북토크를 진행해주신 괵셀 퇴르쾨쥬(Goksel Turkozu) 교수님, 강연자로 오신 장영우 교수님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북클럽 단위로 『밤의 여행자들』을 읽고 토론한 후 질문을 모아 물어본 독자들도 있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인 어느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독자들을 만날 때, 나는 그 출발점에 있는 최초의 한 사람으로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힌다.

 

3박 5일의 앙카라. 라디오 진행을 마치자마자 바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짐을 넣었다 뺐다 하며 허둥댔다. 그럼에도 여행은 타이트한 고삐를 조금 느슨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어서 앙카라 공항에 닿았을 때, 나는 마치 능숙한 여행자가 바로 다음 도시에 닿은 것처럼 익숙해졌고 겨우 며칠 만에 이 도시를 그리워하게 됐다. 앙카라에 대해서라면 하고픈 말이 많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통역사 페이자(Feyza), L과 함께 바라본 앙카라 성의 석양, 그 아래 예쁜 공방에서 받은 깜짝 선물, 골목의 택시 버튼, 짐 보관소까지 고풍스러웠던 미술관, 영감 덩어리였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금요일 밤의 펍,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만티, 익숙해진 홍차, 그리운 카흐발트(Kahvalti)! 그중에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은 마지막 날에 있었다. 곧 비행기를 탈 복장으로 하루치의 짧은 앙카라 관광을 하던 중에 누군가가 “작가님?” 하고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도서전 개막식 가는 길

영감 덩어리였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

 

행사장에서는 줄이 너무 길어서 사인을 받지 못했다면서 인사를 해온 튀르키예 독자의 이름은 니사(Nisa). 우리가 마주친 장소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이었고, 나는 이미 어제의 근육질 작가가 아니었기에 좀 허둥댔지만 곧 무방비 상태에서 맞닥뜨린 이 아름다운 우연이 너무 좋아졌다. 가방 안에 마침 튀르키예어 책이 한 권 있어서 그것을 깜짝 독자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다시 아나톨리아 문명 속으로 흡수되었는데 잠시 후 그녀가 마치 고대 문명의 틈새로 살짝 빠져나온 듯 다가와서는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 박물관에서 파는 예쁜 굿즈들로 하나는 책갈피, 다른 하나는 마그넷이었다.

이제 구면이 된 독자와 내가 두 번째 인사를 나눈 곳은 고대의 각종 증명서 앞이었다. 빚 보증서, 유언장, 왕들이 주고받은 편지, 결혼 증명서와 이혼 증명서……고대 아시리아의 문자로 기록된 오래된 약속들. 생각보다 문서의 크기가 작아서 놀랐다. 이 형상 그대로 쿠키나 비누로 옮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앙증맞은 생김새. 두 번째로 놀란 건 거기 적힌 글자 분량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문서 위에 깨알 같은 글자들이 가득했다. 너무 작아서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글자 크기였는데,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세계의 규격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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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행기. 이번엔 내 옆자리가 모두 비어있지만, 놀랍게도 1인 좌석 단위로 칸막이가 있고 그것이 단단히 고정된 형태다. 나는 또 니은 자로 앉아서 기내 안전 영상의 구성이라든가 좌석의 너비와 폭, 칸막이와 화장실 표시등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 두고 온 문서들을 떠올린다. 4천 년 전의 누군가가 중요한 메시지를 흙에 새겨 불에 굽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재생한다. 깨알같은 글자들이 고온의 열기 속에서 한껏 부풀어오르고, 그걸 상상하는 마음도 부풀어오르고, 그러다 보면 천 년 후의 도서전을 말하는 것이 전혀 무리가 아닐 것만 같다. 천 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19회 앙카라국제도서전의 인사말 문서가 발견된다면 어떨까. 이런 설명이 따라붙어도 좋을 것 같다.

‘2023년 19회 앙카라국제도서전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작가가 쓰고 읽은 말, 두 언어로 여행한 말, 그러나 수천 피트 상공에서 지나치게 부풀어올랐다가 일부가 소실되었다. 복구하지 못한 문장 한 줄이 몹시 아름다운 힘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내용은 끝내 알 수가 없다. 아름다웠다는 소문의 출처도 그리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으나 많은 이들이 지워진 한 줄을 짐작하기 위해 지금도 읽고 또 읽는다고 한다.’

윤고은
소설가, 1980년생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불타는 작품』,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