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작가와의 대화
바다와 음악을 닮은 글쓰기

-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와의 만남

  • 세계작가와의 대화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바다와 음악을 닮은 글쓰기

-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와의 만남

욘 포세 (Jon Fosse)


 노르웨이 소설가, 시인, 극작가, 1959년생 2023 노벨문학상을 비롯하여 2003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2015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 등 전 세계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독특한 내러티브와 스타일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보여 주는 작가 욘 포세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영되는 현대 희곡 작가이자 실험적이고 정교한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산문 작가로 평가받는다. 국내 번역된 도서로 『샤이닝』 『아침 그리고 저녁』 『보트하우스』 『멜랑콜리아1-2』 『3부작』이 있다.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와 그의 작품을 주제로 한 ‘2024 낭독공감’이 4월 23일 대산문화재단, 교보문고, 주한노르웨이대사관 공동주최로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개최되었다. 행사에는 홍재웅 교수, 정여울 작가, 육호수 시인이 참여하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낭독 등을 진행하였다. 2부에서는 욘 포세 작가가 노르웨이 현지에서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독자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정여울 작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욘 포세 작가와의 대화를 싣는다.

정여울) 욘 포세 작가님, 반갑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많은 질문을 보내주셔서 선별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작가님의 책 제목이 멋지다고 해 주신 독자가 많은데요, 제목을 정할 때의 원칙이 있을까요? 주로 어떤 느낌을 살려 제목을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욘 포세) _먼저, 저는 제목이 텍스트에 대해 너무 많은 해석을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로 ‘열려 있는’ 제목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책의 핵심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가끔은 제목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먼저 글을 쓴 다음 찾게 됩니다. 텍스트에서 제목으로 쓸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찾아내는 경우도 많죠.

 

마찬가지로 많은 독자가 궁금해하는 부분인데요, 평소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중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삶과 죽음, 사랑과 같이 작품을 쓸 때 꼭 들어가는 소재가 있다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원격으로 행사에 참여한 욘 포세 소설가

 

_소재에 대해 먼저 생각한 다음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희곡이든 소설이든 장르와는 상관없이 각각의 텍스트에는 각각의 세계가 있고, 나름대로 발전되는 각자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제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는 이것이다’라고 정확히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 작품에서 ‘사랑’과 ‘죽음’이 중심에 놓이는 것 같긴 합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특정 주제를 정해 놓고 글을 쓰지는 않고, 마찬가지로 특정한 하나의 주제로 제 작품세계를 요약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님의 글에는 마침표보다는 쉼표로 계속 이어지는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부분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마침표 대신 쉼표를 즐겨 쓰시며 호흡이 긴 문장을 구사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_글을 쓸 때 마치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계속 이어질수록 확실히 ‘리듬’이 필요해지죠. 산문에서 그 리듬은 대부분 쉼표나 마침표에 기반합니다. 그래서 전체 텍스트의 흐름이 문장부호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예를 들어 『보트하우스』에서는 쉼표가 많이 사용되었고,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는 않은 가장 최근 작품에서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완전히 멈추는 부분이 없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시이고 간혹 쉼표가 들어가기도 하지만요. 『아침 그리고 저녁』도 그런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결국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부 리듬에 대한 거예요. 소설의 경우 쉼표나 마침표 등 장치들을 사용해야 하지만, 희곡에서는 짧거나 긴 휴지(休止)를 문장 부호 대신 사용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생각해 보니 결국 산문에도 운문처럼 리듬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작품에도 바로 그런 시적인 운율과 리듬이 들어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소리 내어 읽는 게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은 보통 작가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작가님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바다와 가까이 사신다고 하는데 산책을 자주 하시는지, 평소에 책은 얼마나 읽으시는지 등 평범한 일상 루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_198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약 40년간 글을 쓰면서 제 루틴은 많이 변해 왔습니다.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침에 글을 쓴다는 점인데요, 일어나자마자 최대한 바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아침잠이 많아서 9시에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오전 5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실 제게 글쓰기라는 과정은 어떤 의미로는 조금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자료 조사나 기존 문헌을 거의 활용하지 않아서, 제 작업은 알 수 없는 세계로의 여정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돌아올 때면 이 세계에는 없던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오죠.

예를 들면, 『샤이닝』에는 혼자 숲속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아침 그리고 저녁』의 두 주인공에 대해서도 어떤 정보도 없었죠. 그들은 그냥 제가 쓰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에요. 이런 모든 시간을 돌아보면, ‘바로 이것이 글쓰기의 신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창작 휴식기를 갖는 동안 번역을 즐겨 하고 있는데요, 노르웨이어나 다른 스칸디나비아어를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약간의 프랑스어나 라틴어를 읽을 수도 있고요. 고대 북유럽 언어도 번역이 가능하죠. 또 희곡 작품도 많이 쓰고 있고 그리스 비극을 번역하기도 합니다. 가능한 한 저의 언어에 가깝게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현재 시점에서 공연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죠.

 

이야기를 들으니 놀랍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이미 머릿속에서 그려진 상태에서 작업하시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점이 인상 깊었고, 그래서인지 좀더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2024 낭독공감 '욘 포세를 읽다' 행사, (왼쪽부터) 정여울 작가, 홍재웅 교수, 육호수 시인

 

_네, 사실 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그 우주가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 자신을 미지의 세계로 떠나도록 떠밀어야만 하는데, 바로 그런 이유로 조금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제가 저 자신에 대해 편안하지 않은 상태일 때는 굉장히 위험하고 무서운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잠에서 깨서 바로 글을 쓰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꿈의 영향을 받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꿈의 영향으로 작품 속 인물이 다른 말을 하거나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을까요?

_그렇지는 않고, 저의 글쓰기 자체가 꿈꾸는 것과 같은 과정입니다. 꿈에 꿈을 집어넣을 수는 없듯이 시도해 본 적은 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도 비슷하다고 느끼는데,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을 때는 음악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글을 쓸 때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의 박자 같은 것들이 제가 쓰는 ‘음악’과 서로 충돌해서 방해가 되거든요. 그래서 조금 시끄러운 공간에서는 글을 쓸 수 있지만,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기는 힘들어요.

 

이것은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인데요, 『3부작』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일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 바이올린 연주도 작가님의 글을 닮은 연주가 아닐까 상상해 보았는데요, 어떤 느낌일까요?

_노르웨이에는 하르당겔 바이올린(Hardanger Fiddle)이라는 악기가 있는데요, 바이올린처럼 현이 4개이고 그 아래에도 현 4개가 또 붙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 다른 현들이 흔들리면서 특이한 소리를 내죠. 제 고향에서도 연주했었고 악기 이름도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어요.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춤을 추고 싶거나 할 때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필요해집니다. 이처럼 노르웨이 사회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는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실질적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비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존경받는 역할이고,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해 왔죠.

『3부작』에 등장하는 하르당겔 바이올린 연주가 바로 그 음악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전문 연주자는 제 글쓰기 방식이 그들의 바이올린 연주와 비슷하다는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제 글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하나의 곡과 닮았다고 했고, 심지어 정말 영광스럽게도 바흐의 음악에 비유해 주기도 했죠. 하르당겔 바이올린 음악과 바흐의 음악에도 유사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부분을 변주하며 여러 번 반복되는 방식이 비슷한데요, 이 때문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으면서도 확실히 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작가님의 삶과 작품이 우리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특히 ‘함께 나이 드는’ 듯한 감상이 드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특히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독자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위로와 공감을 나눠주시는 작가님은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받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힘의 원천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_여러분께서 제 문학을 통해 위안받으셨다면 너무나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 글이 꼭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통해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기쁘거든요.

저도 책을 많이 읽는데요, 다른 취미가 특별히 많은 건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는 하르당겔 피요르드(Hardanger Fjord)에서 살았고 북해 근처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이후로는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지냈습니다. 노르웨이 서부는 바다 근처이고 저는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아들의 도움을 받아 배를 관리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바다로부터 위안을 받기도 하죠. 바다 근처에서 자라며 파도가 치고 밀물이 들어왔다가 썰물이 밀려 나가는 풍경을 봐 왔습니다. 바다의 리듬과 함께 자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린 시절 최고의 추억 중 하나는 아버지와 함께 작은 나무배를 타고 늦게까지 낚시를 하다가 어두워질 때쯤 다시 해안으로 돌아오는 기억이기도 하죠. 이런 경험들이 저를 형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희곡을 포함해 다양한 장르를 창작하셨는데,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동기나 힘의 원천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작가님께서 느끼기에 장르 사이에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_처음에는 시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게 작품활동을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2살 때쯤에는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고, 23살에 첫 번째 소설을 출판했습니다. 그때쯤에는 이미 시도 많이 쓴 상태였기 때문에 2년 후에는 시집을 출간했죠. 사실 둘은 서로 굉장히 다른 장르이긴 하지만 야심차게 두 가지를 동시에 시도한 셈입니다.

그다음에는 희곡까지 도전하게 되는데요, 처음부터 희곡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작업을 의뢰받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서 생계를 위해 극작을 하게 되었는데, 일단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하자 음악 시놉시스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곧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소리를 이용해서요. 특히 시나 소설에서는 잘 쓸 수 없었던 ‘침묵’이라는 장치를 희곡에서는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소설에서는 반복 등을 통해 침묵을 대신하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첫 희곡을 쓸 때는 시에서 배운 것 일부, 소설에서 배운 것 일부를 가져와 함께 적용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수년간 많은 희곡을 썼고 그중에서도 많은 작품이 무대화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희곡은 이제 충분히 썼다는 마음이 들어 처음에 작품활동을 시작했던 시와 소설로 돌아가 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때 쓴 작품이 『3부작』과 『7부작』이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희곡을 쓰는 도중에 틈틈이 완성했고,

『멜랑콜리아』는 희곡을 쓰기 전에 시작했던 작품이어서 그것을 마쳤을 때는 글쓰기가 좀 힘들더라고요. 그때가 소설과 시로 돌아온 지 약 15년쯤 지난 뒤였는데요, 마침 운 좋게 희곡 의뢰가 들어와 다시 희곡을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희곡이든 시든 무언가 저에게 와닿는다면 그것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창작의 역사를 들어보면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소설에서 시로, 그리고 희곡으로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동력을 얻고 계시는 듯한 느낌입니다. 희곡은 희곡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듯, 소설이나 시에도 각자만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휴식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_저는 시와 희곡이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 다 강한 긴장감이 필요한데, 그에 비해 행동은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죠. 희곡과 산문 작업을 병행할 때는 시를 덜 쓰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시와 희곡은 상호 보완적이라기보다는 번갈아 쓸 수 있는 장르라고 느껴집니다. 어쨌든 희곡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집필을 보다 천천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런 측면에서 소설은 특이합니다. 굉장히 길고 더딘 행동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0페이지 동안이라도 가능하죠. 그런데 희곡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하니까 참 즐겁더라고요. 이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저에게는 작가로서의 삶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인데요,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으면서 ‘이런 죽음이라면 조금 덜 무섭겠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옛 친구가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마중을 나와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는데요, 나에게 매우 소중했던 사람이 나를 마중해 준다면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_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읽으면 적어도 더 무서워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독자들도 그런 경험을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은 없앨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샤이닝』 같은 경우에도 길을 잃어버린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어 보셔도 죽음이 더 무서워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부작』에는 죽은 남편이 아내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말을 걸어주고, 물리적으로는 죽었지만 그를 계속 기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죽음이 그래도 덜 두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과 삶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다가도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_제 작품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크지 않습니다. 제 글에 담긴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해석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3부작』에는 남편이 사후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웠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죽었거나, 둘 다 죽었거나 다른 한 명이 죽어가는 상태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의 두 사람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제 희곡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샤이닝』의 인물들이 맨발로 등장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_제 글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필연적이고, 분명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를 꺼리는 편입니다. 제 글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 역할은 글을 쓰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두는 것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와 마찬가지죠. 그들은 그저 음악을 연주할 뿐이고, 청중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받아들이니까요.

 

말씀하셨듯 작가님의 작품에는 항상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삶과 죽음이 작가님께 어떤 느낌으로 말을 걸어올까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작가님께 어떤 소중한 의미를 가질지 궁금합니다.

_죽음은 사실 저나 여러분에게나 비슷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짧게 제한된 시공간 안에 있지 않습니까? 현재 이외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로요. 우리는 각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확실한 건 ‘언젠가 죽을 것이다, 사라질 것이다’라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저는 시도 쓰고 소설도 쓰기 때문에, 굉장히 솔직하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 특히 사랑이나 죽음 같은 주제에 대해서라면 추리소설에서처럼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독자가 최대한 죽음의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제 이름은 정여울이라고 하는데요, 순 한글 이름이고 ‘빠르게 흐르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항상 물처럼 흘러가는 작가님을 응원하며 열심히 읽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여 오늘은 마침 세계 책의 날이기도 한데요, 대화를 마무리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_여담이지만 제 성이 정여울 작가님의 이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 성 ‘포세’는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라는 뜻이거든요. 아무래도 (여울과 같이) 흐르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겠죠.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사실 책을 읽고 싶지 않다면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아요. 책을 읽다가도 별로 재미가 없어진다면 그냥 그만 읽으시면 됩니다.

독서는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감정을 전해줍니다.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모든 위대한 작가나 작품은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해 주고, 각자의 세계관을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고, 삶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죠. 여행을 통해서도 삶의 시야를 넓힐 수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삶이 바뀌고 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삶을 느끼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다시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감사합니다.

 

*정리 : 장다희(대산문화재단 사업팀)

 

정여울
작가, 1976년생
저서 『마음의 서재』 『문학이 필요한 시간』 『공부할 권리』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월간 정여울』 등, KBS 제1라디오 〈강유정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 드 뮤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