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더 숲

  • 단편소설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더 숲

이모가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더 숲>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더 숲>은 은행 에이티엠 기계 속의 현금다발처럼, 내 눈앞에 있으면서도 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심하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버스를 타면 언제나 <더 숲>의 실루엣이 차창 유리에 어른거렸지만 나는 주의를 기울여 쳐다보지 않았다. 마트에 가면서 음울한 스모그에 수수께끼처럼 감싸인 <더 숲>의 고층부가 어쩌다 시야에 들어와도 나는 곁눈질할 뿐이었다. 집 옥상에 널린 쓰레기들을 치우면서 난간 저 너머로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더 숲>의 넝쿨이 눈에 띄어도 그저 저런 게 있나 보네 했다. 내 생활반경 어디서나 고개만 들면 <더 숲>이 보인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와 내 주변 사람 대부분이 <더 숲>의 생태계에 속하고 <더 숲>에서 나온 부산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시야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출근하다 말고 멈춰서서 고개를 들고 <더 숲>을 쳐다봤다. 두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니, <더 숲>은 세 가지 재료로 단출하게 이뤄진 깎아지른 벼랑 같았다. 식물과 돌과 유리로 세워진 수직의 밀림 같았다. 꽃과 이파리, 가지와 넝쿨들이 순백의 돌들을 타고 흘러내리고, 유리창들이 냉랭한 눈동자처럼 빛났다.

매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양재 꽃시장 사고 이후로 공기의 매운맛이 더해가는 것만 같았다. 2년 전만 해도 아침 출근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적당히 솟으면 견딜 만해졌다. 하지만 꽃시장에서 폭발 사고가 나고 주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공기의 질까지 더욱 흉흉해지는 것 같았다.

이모는 복구공사를 한 꽃시장이 환기 시설이 시원찮다고 투덜댔다. 꽃시장은 한겨울에도 반소매 셔츠를 입을 수 있을 만치 더웠다. 환기가 잘 안 되니 매운 공기에 꽃가루까지 더해져 이모도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더 숲>에 테레사라고 있잖아. 이모는 <더 숲>의 테라스를 가꾸는 플로리스트여서, 그곳을 드나들며 간혹 입주민들과 격의 없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테레사가 천식이 있잖아. 나도 요즘 자꾸 목구멍이 칼칼하고 마른기침이 나서, 테레사가 쓰는 이탈리아제 천식 스프레이를 구해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 테레사네 가족은 휴가철이면 로마엘 가잖아. 이모가 말하는 테레사라는 천주교인은 바티칸이 바라다보이는 언덕바지에 지중해식 빌라를 갖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봐요, 윤 씨, 하고 정색을 하더라. 이모는 머리카락 사이에 숨은 비듬이라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윤 여사님, 하고 다정하게 불렀었지. 윤 씨, 장미 몇 줄기가 시든 것 같던데, 테라스에 좀 나가봐요. 진짜로 목향장미 넝쿨 몇 개가 시들었더라고. 손질을 좀 하고 다실로 돌아왔는데, 테레사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날 보고 있어. 내가 말을 시켜도 대답도 안 하고. 내가 민망해서 다실을 나올 때까지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날 노려보고. 그리고 다음 날 오후부터 갑자기 공용 테라스만 관리하게 됐잖아. 세대 테라스 일이 끊겼으니 월급은 반 토막이 나고.

폭발 사고로 꽃집 장사 밑천을 날린 것도 타격이 큰데, 반 토막 난 월급으로는 이모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모는 테레사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리다 적금을 헐어야 할 지경이 되자 겁이 덜컥 나 용역회사의 소장을 찾아갔다.

이래서는 이 동네에서 월세를 내고 살 수 없어요, 하고 이모가 말했다, 일을 더 해야 해요.

소장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뒤적였다, 이모님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요? 기다려보세요. 하지만 연락은 없었고, 몇 주가 지나 이모는 다시 소장을 찾아갔다. 그때쯤 이모의 얼굴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내가 보험까지 깨야 하겠어요? 하지만 소장의 대응은 똑같았다, 가서 기다리세요.

이모는 <더 숲>의 입주민들이 갑자기 거리를 두는 게 양재 꽃시장에서 있었던 화재 탓이 아닐까 의심했다. 아니, 의심은 <더 숲>의 입주민들이 했다. 그 사고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포털 사이트만 열면 꽃시장 화재를 다룬 뉴스 웹페이지들이 주르르 흘러내렸으니까. 뉴스에서는 폭발이 아니라 화재 사건이라고 했다. 화재든 폭발이든, 직접 목격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도 작업에 쓸 전선관을 사러 나왔다가 그 불꽃 쇼를 봤다.

 

나는 꽃시장 길 건너편에서 도우미 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난생처음 듣는 소리가 아득히 길 건너편에서 울렸다. 뭔가가 불규칙한 박자로 연달아 한낮의 나른한 공기를 거세게 밀어 올리는 듯한 소리였다. 꽃시장의 아치형 지붕 저쪽에서 오렌지색 불꽃 하나가 달군 바늘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그러고는 가스 용접기에서 불꽃이 날름거릴 때 나는 쉭쉭 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려왔다. 지붕에서 불꽃이 두어 개 더 솟았을 때부터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열풍을 타고 가벼운 꽃잎 같은 것들이 무지개색으로 반짝이며 불꽃 주변을 맴돌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쉭쉭 소리가 폭주 오토바이의 머플러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이 되어 귓전을 때렸다. 오렌지색 불꽃은 열 개 스무 개로 불어났고, 불덩이들이 지붕을 타고 벽으로 흘러내렸다. 꽃잎들은 불의 파편이 되었다가 시커멓게 숨이 죽어 흩날렸다. 차도로 뛰쳐나온 누군가가 차에 치여 질질 끌려갔다.

나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자리를 떴다. 작업에 필요한 자재를 사러 나온 참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우미 촌으로 가 민원이 접수된 빌라로 들어갔다. 그제야 꽃시장에서 일을 하는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이모에게 전화했다, 무슨 일이래요? 이모는 불에 탄 목재처럼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테레비를 봐. 그렇지 않아도 거실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이모는 별일 없는 거죠? 별일 많지. 나 알거지 된 거 같아.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사다리에 올라 천장의 등 기구를 뜯어 안쪽을 지나는 전선을 살펴봤다. 전선을 보호하는 전선관도 없이 그냥 전선 두 가닥만 쥐 오줌 냄새가 나는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뉴스에서 뭐 재밌는 거 나와요? 나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아 있는 몽골인에게 물었다. 불났다는데? 그녀는 레이즈 감자 칩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직 연기를 뿜고 있는 양재 꽃시장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전선관을 길이에 맞게 자르고 전선을 넣어 요비선에 묶었다.

이거 설치하려면 두꺼비집을 내려야 하는데. 몽골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으로 문간에 붙은 분전함을 가리켰다. 두꺼비집이란 말을 아네. 나는 단선이 된 라인을 천장에서 제거하고 전선관에 넣은 제대로 된 규격의 전선을 등 기구에 연결했다. 나는 전등이 제대로 켜지는지 확인하고는 몽골인의 사인을 받고 빌라를 나왔다. 처음 만난 몽골인이고 이 빌라에도 처음 들어와 보지만, 이모도 나도 몽골인도 <더 숲>의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똑같은 신세의 사람들이었다. 이모는 꽃시장과 <더 숲>을 오가며 테라스를 사철 내내 파릇파릇하게 가꾸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몽골인은 <더 숲>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새벽에 분리 수거해 <더 숲> 입주민들의 출근길을 상쾌하게 유지해주는 일을 하고, 나는 방금 몽골인의 빌라에 전등을 고쳐준 것처럼 도우미 촌의 갖은 생활민원을 처리해주는 일을 한다.

그러니까 <더 숲> 입주민들의 일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도와주는 사람들의 일상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직업이다. 도우미들의 도우미. 그리고 우리는 모두 도우미 촌에 산다.

도우미 촌은 <더 숲>의 전망과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으면서, <더 숲>의 호출에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자리에 형성됐다. <더 숲>의 테라스에 서서 바라보면 도우미 촌은 공원의 아름드리나무들에 은폐되어 눈에 띄지 않았다. 어떤 층의 테라스에서도 물 빠진 벽돌과 삐뚤어진 지붕으로 이뤄진 빌라촌 동네와 그 안을 오가는 촌스럽고 허름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더 숲>에 필요한 인력을 저렴하고 넉넉하게 부려 먹으려면, 그들이 살아갈 저렴한 주거비의 주택단지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더 숲>에서 재개발이 예정된 구축 빌라촌 하나를 도우미들의 주거지로 만든 것이었다. 도우미 촌은 <더 숲>으로부터 푼돈을 받는 사람들이 푼돈으로 살 수 있는 동네였다.

나는 꽃시장에서 날아든 탄내를 맡으며 관리공단 사무실로 갔다. 관리공단이라는 명칭만 그럴듯하지, 버려진 놀이터에 컨테이너 주택 하나를 갖다 놓고 여러 용역회사가 책상과 소파 몇 개를 나눠 쓰는 곳이었다. 그곳 텔레비전에서도 꽃시장 화재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꽃도 다 타버렸겠네. <더 숲>에 간병인과 간호사를 공급하는 용역회사의 소장이 혀를 찼다. 저게 다 얼마야.

이들 용역회사가 중간에서 도우미들이 받는 푼돈에 빨대를 꽂아 빨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더 숲>의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우미 촌에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있었다. 푼돈을 견딜 수 없었던 몇몇 입주 간호사들이, 링거를 놓아주고 있던 입주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직접 고용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러자 며칠 만에 해고 통지가 날아왔다고 했다. 도우미 촌과 무엇이든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는 일은 <더 숲> 입주민들이 질색팔색할 일이었다. 이모가 그 사실을 잠시 잊었다. 도우미들을 잠시 살갑게 대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몸에 밴 예의범절일 뿐이니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언젠가 47층 어느 집 와인 저장실의 공조기를 손보러 가서 그 질색팔색하는 표정을 마주했다. 일하는 내내 팔짱을 끼고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내가 31세 미혼이고, 천안이 고향인 온갖 분야 기술자이고, 그런데 무슨 직업을 가져야 이렇게 아름다운 초고층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느냐고 구김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말이 아니라, 일그러진 미간과 치켜 올라간 입꼬리였고 경직된 뺨이었다. 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챘지만 그게 뭔지는 몰랐다. 내가 아는 건 그날 이후 <더 숲>에서 더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관리공단에는 남아있을 수 있었다. 내 몫의 푼돈은 더 푼돈 같아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소방차와 구급차가 달리는 긴박한 광경이 중계되고 있을 때, 관리공단에는 당장 내일 <더 숲>의 테라스를 꾸밀 화초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묻는 전화가 왔다. <더 숲>의 미관을 담당하는 용역회사의 소장이 허둥지둥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민 기사. 너 윤 씨 아주머니 알지? 여기서는 소장 직급만 달면 모든 도우미에게 반말을 쓸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럭 몰 수 있지? 소장이 1톤짜리 봉고 트럭의 키를 던져주며 양재 꽃시장에 가 이모를 태우고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 다녀오라고 했다.

내가 차창을 내리고 경적을 울리자 이모가 영혼이 한숨 꺾인 듯한 해쓱한 얼굴을 들었다. 이모와 나는 고터 꽃시장에 가 저녁 늦게까지 꽃과 나무, 이끼들을 골라서 <더 숲>으로 갔다. 지하 주차장 입구를 경비가 지키고 있었다. 나는 출입 카드가 없었지만, 이모가 사정을 설명했다. 파란 눈의 경비가 나와 내 신분증을 번갈아 노려봤다. 지하 주차장에서 <더 숲> 세대로 이어지는 입구마다 또 다른 경비가 서 있었다. 우리는 구석에 화초를 부려 놓고 밤새 마르지 않도록 텐트 천으로 덮어두었다.

집에 돌아와 씻으며 뉴스를 들었는데 꽃시장 화재 뉴스는 벌써 다른 뉴스들에 밀려 짧게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내 앞으로 박 씨가 실려 나가더라, 던 이모의 갈라진 목소리를 떠올렸다. 휴대전화에서 검색해봤지만, 꽃시장에서 얼마나 죽고 다쳤다는 식의 자세한 보도는 없었다.

몰라, 난 몰라. 나는 모를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 삶은 마약 중독자인 아들 탓에 도우미 촌의 40년 된 빌라 반지하 셋집에서 사는 이모보다는 나은 삶이었지만, 나아봤자 반지하와 1층 정도의 차이였다. 반지하에서 층계 한둘 올라온 수준이 내 삶이었다. 호기심은 내겐 사치였고, 몰라도 될 것을 아는 일은 피곤한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재앙 같은 일이었다.

양재 꽃시장은 한 달 만에 전과 똑같이 복구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지붕을 다시 씌우고 벽을 다시 세우고 식재에 필요한 설비들을 복구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 한 달 동안 이모와 나는 봉고를 끌고 다른 꽃시장들을 다니며 <더 숲>에 물건을 댔다.

꽃시장이 복구되는 속도만큼 화재 뉴스도 빠르게 매체들에서 사라져갔다. 텔레비전을 켜면 인기 가수가 나와 입지 좋은 빌딩을 고르는 법부터 은행 대출을 받아 빌딩을 사고 속 썩이는 세입자를 잘 타일러 내쫓는 방법까지 상세히 일러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아니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콘텐츠를 제작해 인터넷에 올려 돈을 버는 법, 아니면 은퇴한 정치인이 나와 코인 계좌를 트고 빚을 내 투자해 수익을 챙기는 과정을 버라이어티 쇼처럼 구성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누구나 다 아는 허튼소리들이었다. 그 프로그램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빈부격차 우는소리 따위는 개나 줘, 나만 따라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데 무슨 남파간첩 같은 소리야? 돈을 벌고 싶으면, 등신 같은 소리는 접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

이모도 꽃시장의 점포가 복구되어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이웃 상인 중 누가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자리가 비어도 장사를 접었다거나 점포를 옮겼다는 말만 돌아왔다. 우리가 아는 건, 우리가 써먹지 못할 돈 버는 방법 수백 가지뿐이었다. 이모에게도 호기심은 사치였다. 손해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보험사와 다툼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 골칫거리는 곰팡이였다. 나는 내 안식처와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벽 모서리마다 바람이 들어오는지 손등을 대보고, 벽지를 꾹꾹 눌러보며 곰팡이가 피어 들고 일어난 자리를 찾았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습기가 집 전체에서 기분 나쁘게 너울거렸다. 책상 표면, 방문과 유리창, 밥그릇과 식탁, 옷장과 그 속의 옷들…… 모든 곳에서 미끌미끌 끈적한 물기가 묻어나왔다. 끈적한 것은 곰팡이 포자였다. 욕실은 특히나 부실해서, 흰 타일 벽의 절반이 곰팡이로 새까맣게 얼룩지는 데 한 계절이면 충분했다. 욕실 벽에 난 균열로 바람이 들이쳐, 겨울엔 맨 엉덩이에 소름이 돋았고, 여름엔 찜질방 같은 후텁지근한 바람에 어지럼증이 일었다. 가을부터 다음 가을까지 네 계절을 살고 나니, 나는 곰팡이 포자들이 내 허파를 배지 삼아 검은 꽃밭을 이루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셋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업소를 찾았다. 오래된 집인 거 알고 들어갔잖아요. 구축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집주인이 보수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빌라 집주인 대신 법률 대리인이 나왔다. 집주인은 <더 숲>에 살았다. 직접 만나줄 리 없었다. 대리인은 내 설명을 듣고 사진을 보더니 전세 계약을 맺고 들어올 때 이미 새로 도배를 해줬으니 그 이상의 요구는 무리라고 했다.

나가려면 언제든 나가실 수 있어요. 그 대신 중계비는 세입자가 내야 합니다. 부동산업자의 말에 내가 흥분을 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자 법률 대리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면 법에 호소를 하시든가. 하, 법에 호소……

나는 며칠 후에 부동산업소를 다시 찾았다. 그 돈으로 도우미 촌에선 더 나은 곳을 못 찾아요. 2억 더 있어요? 있으면 도우미 촌을 아예 떠나서 논현동 쪽에 신축 원룸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2억은커녕,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재테크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하다가 현금이 죄다 이름도 괴상한 코인에 물려 있는 상태였다. 도우미 촌의 푼돈 인간들이 수십 년을 일해도 자산이 푼돈인 이유가 있었다. 투자라는 근사한 말에 혹해 여기저기 돈을 넣었다가 자산이 묶여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제습기를 사서 돌려요, 제습기는 싸잖아. 부동산업자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억울하면 성공하시든지.

며칠 더 참다가 부동산업자를 통해 다시 대리인을 불러냈다. 기분이 나빠진 대리인을 끌고 나는 집으로 가서 내부를 둘러보게 했다. 들뜬 벽지와 미끌거리는 방바닥과 검은 곰팡이가 스멀스멀 먹어 치우고 있는 욕실을 보여줬다. 이 동네가 다 이래요. 대리인은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이런 데서 산다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전셋집 전에 살았던 반지하 월셋집도 곰팡이 색깔만 달랐지 비슷한 문제가 있었고, 옷에 늘 퀴퀴한 곰팡이 내가 배어서 연애는커녕 친구들 만나기도 꺼려졌었다. 하지만 그건 월셋집이고.

이게 어딜 봐서 1억5천만 원짜리 집입니까? 나는 불끈 소리를 높였다. 싸네. 대리인의 눈이 커졌다. 2억은 받아야 하는 직주근접 옵션이잖아요. 세입자님은 코앞이 직장 아니에요? 차비도 안 들고.

억울하면 대기업 정규직에 들어가서 공원 건너 아파트 같은 걸 분양받든가 했어야죠. 대리인이 현관을 나서며 툭 던지듯 말했다. 억울해서 못 참겠으면 서울대, 연고대 나와서 <더 숲> 같은 데 살든가.

나는 그런 모질고 깔보는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모 집 주방의 배수구를 뚫으러 가서 그 얘기를 했다. 가슴이 돌덩이에 짓눌린 듯 무거웠다. 이모의 반지하 집도 축축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척 봐도 깔끔하게 잘해놓고 살았다. 욕실엔 곰팡이 대신 잘 마른 수건이 걸려있었고 거실에선 달콤한 체리 향이 났고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모도 억울해요? 내가 묻자 이모는 소리 내 웃었다. 민 기사는 남자잖아. 남자가 살면서 억울하기도 해?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따라 웃기만 했다.

그날은 마침 이모네 가족의 생일이었다. 저녁을 먹고 가라기에 식탁에 앉았더니 미역국이 나왔다. 나는 보험사랑은 잘 해결됐냐고 물어보려다가 이모의 상심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고, 아들은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또 입을 다물었다. 도우미 촌에 사는 푼돈 인간들의 평균적인 인생을 고려해봤을 때, 최악의 상황이 이모를 덮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를테면 보험사랑 진흙탕 싸움을 벌여 겨우 쥐꼬리만 한 보험금을 받아왔더니 아들놈이 마약을 사는 데 탕진해버리는 그런 상황이.

나는 그 대신 꽃시장 화재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뭔가 구체적인 결말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불을 질렀을까요? 그게 방화라고 누가 그래? 이모가 펄쩍 뛰었다. 아니에요? 난 몰라. 이모가 고개를 저었다. 보기엔 꼭 폭탄이 터진 것 같았는데. 내 말에 이모는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부정했다. 폭탄이라고 누가 그래?

이모가 <더 숲>을 드나드는 플로리스트여서 나는 은근히 기대하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도우미 촌 사람들은 온갖 전문가들의 말보다도 <더 숲>에서 흘러나온 정보들을 더 신뢰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핀란드에 쳐들어갈 거라는 이야기도 열흘 먼저 <더 숲>에서 흘러나왔다. 대형 건설사들이 줄도산을 시작할 테니 주식을 빼라는 이야기도, 여당 대표가 체포되고 징역을 살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북한에서 전쟁을 준비 중이니 군대에 자식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파이브 아이즈 국가로 보내라는 이야기도 <더 숲>에서 흘러나왔고, 남침을 제외하고는 현실이 되지 않은 이야기가 없었다. 하긴 그럴밖에. <더 숲>에는 군사 전문가가, 증권사 대표가, 국회의원이, 헌법재판소의 판사 가족이, 방송에 나오는 국제 정세 전문가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모는 진짜 정보는 <더 숲> 사람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뉴스는 연예 기사만 찾아봤다. 이모는 언론사 뉴스란 정보를 기계로 꾹 눌러서 납작하게 만든 와플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면 정보가 평평해지고 얄팍해지고 약간 타기까지 하지. 시럽까지 얹으면 우리는 원래 재료가 무슨 맛이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지는 거잖아.

너만 알고 있으라고. 이모가 마침내 진실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범인은 벌써 잡힌 것 같아. 그래요? 하나인지 여럿인지는 몰라도. 여럿이라면 단체? 거기까진 몰라. 이모의 동공이 커졌다. 뭔가 더 있는 거 같아, <더 숲> 입주민들이 서둘지 말라면서 사건을 경찰로 돌려보냈대. 이번엔 내 동공이 커졌다. <더 숲>이 무슨 상관이래요? <더 숲>에서는 자기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 같아.

근데 무슨 권리로 사건을 돌려보내고 그래요? 의미 없이 툭 던진 말이었지만 내 말에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 대단한 사람들인가 보네.

꽃시장 사건이 그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 같아. 그 사람들, 불자 들어간 걸 못 참거든. 불안, 불안정, 불확실, 그 사람들 불안한 걸 못 참아. 그러니 어떻게든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 없애려고 들지 않겠어?

그 사람들이 왜 불안해할까요? 내가 속삭이듯 물었다.

몰라, <더 숲> 입주민 중에서 사상자가 좀 나왔다나 봐. 이모도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물론 그런 얘기는 뉴스에서 쏙 빠졌지. 남들 눈에 자신들이 해를 끼치고 싶으면 언제든 해를 끼칠 수 있는 취약한 사람들처럼 보일 테니까. 그거야말로 큰일이지. <더 숲> 입주민들 사이에서 이건 우리를 목표로 한 사건이다, 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나 봐. 공감대요? 여론? 다들 그래.

 

한 계절쯤 지나자, 꽃시장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우미 촌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 다음으로 꽃 배달 봉고를 몰던 만주에서 온 춘 형이 겨울이 한창일 때 사라졌다. 중국 국적이니 언제든 제 나라로 가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건 실종에 가까웠다. 어느 날 관리공단에서 춘 형이 출근을 안 하니 집에 가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나는 도우미 촌에서도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도서관 길로 갔다. 동네가 점차 슬럼화되자 시에서 도서관 시설을 빼버린 길목에 춘 형의 셋집이 있었다. 도서관은 지금은 간판 하나 달려 있지 않고, 1층 출입문은 흰색 비닐로 덮어버린 중국인 건물이 되어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안에서 여럿이 중국말로 크게 떠드는 소리가 났다. 나는 외국인 공장노동자 기숙사로 쓰이는 연립주택으로 들어가 2층 춘 형 집 문을 두드렸다. 이곳 소유주도 <더 숲> 입주민이었고, 그도 법적인 문제를 처리할 대리인을 두고 있었다. 나는 관리공단을 통해 대리인을 찾아 건물 관리인에게서 열쇠를 받았다. 불법인 건 알았지만 이건 <더 숲>과 관련된 일이었다. 경찰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집이 그렇게 냉골일 수가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워낙 짐이 적어, 집에 짐을 놓고 사라진 건지 아니면 짐을 들고 나간 게 이 정도인 건지 언뜻 봐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장롱 서랍을 뒤졌다. 옷가지 몇 개가 서랍 속에 헝클어진 채로 남아있었다. 캐리어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무슬림인 그가 륙색에 넣어 다니던 기도 러그가 두 개나 베란다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나는 관리공단으로 돌아가 가방을 싸서 나간 것 같긴 한데, 무슬림이 기도 러그를 그냥 놔두고 가기도 하냐고 보고했다.

나는 도우미 촌에서 사라진 사람이 춘 형 하나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사라진 사람들은 남자기도 여자기도 했고, 늙기도 젊기도 했고, 한국인이기도 외국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더 숲>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고, 사고 전후로 양재 꽃시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공기가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쁜 공기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처럼 중국을 욕했다.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 초여름이 되어 전세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내 돈은 여전히 코인에 물려 있었고 내 수입은 푼돈 수준이었다. 전세 시세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었다. 나는 부동산업소에 집을 비우겠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유월과 함께 후텁지근한 여름이 시작되자 곰팡이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곰팡이들이 집과 함께 내 폐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가래가 끓으면서 유월에 크게 한 번 앓았는데, 나는 그게 곰팡이 탓인지 매운 공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관리공단이 있는 버려진 놀이터에서 자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모가 왔다. 이모는 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민 기사, 올해 매미 소리 들어봤어? 고개를 드니 이모의 한층 주름이 진 마른 손이 보였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봤다. 아뇨. 그러고 나는 허공에 귀를 기울여봤다. 안 들리네요.

나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길에 떨어져 죽은 매미를 봤다. 이모가 말했다. 매미 소리 말고 매미 시체. 이모가 손을 가늘게 떨고는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이모의 거칠고 새된 목소리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공구함을 들여놓아야 하는 척 나는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난 일을 더 해야 한다고요. 이모가 용역회사의 소장에게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걸로는 하루 두 끼 먹고 살기도 어렵다고요. 소장도 지지 않았다. 나 참,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세 끼를 다 챙겨 먹고 살아요? 이 소장이나 저 소장이나 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똑같았다.

내가 <더 숲>에 직접 가볼까? 이모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긴 어딜 간다는 거예요. 가지 마세요. 소장이 질색하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우리 직원이지, 거기 직원이 아니라고요.

아냐, 아무래도 직접 가서 들어봐야겠어, 내 일을 왜 자꾸 줄이는지. 이모는 소장 말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짜 뭔가 이상하다고. 이상하잖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월 수당 백오십만 원짜리 일거리를 이십만 원짜리로 줄여?

내가 가서 직접 얘기할 거야. 이모가 계속 혼잣말을 했다. 난 꽃시장 그 사건이랑 관계없으니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말라고. 난 피해자라고, 내가 뭘 안다고. 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야, 이모는 한번 크게 고개를 젓더니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게 내가 본 이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이모를 쫓아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소장도 자기가 뭘 어쩔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자, 내게 이모가 어디 갔는지 아느냐고 물어왔다. 이모에게 전화해 보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받았다. 소장은 이미 이모의 아들까지 수소문해본 모양이었다. 아들은 구치소에 있었다.

 

* 계간 <대산문화> 2024 여름호(통권 92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백민석
소설가, 1971년생
장편소설 『공포의 세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 『해피 아포칼립스!』 『플라스틱맨』, 소설집 『혀끝의 남자』 『수림』 『버스킹!』, 에세이 『리플릿』 『러시아의 시민들』 『헤밍웨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