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시는 누가 쓰지?

-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 창작후기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시는 누가 쓰지?

-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문예창작과에 다녔지만, 소설을 주로 창작했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시는 늘 궁금한 대상이었다. 시를 쓰는 친구에게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물어보면, ‘네가 읽는 것이 답이야’라는 추상적인 답만 돌아왔다. 시에 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복학생이 되어 시론 수업을 용기 내서 들었다. 여러 나라 시인의 생애와 시를 다루는 시론은 1학년 수업으로 개설되었지만, 시론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에 2학년이 되어서야 신청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시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문득 나를 가리키면서 “시는 누가 쓰지?” 물었다. 당황한 나는 “시는 제가 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사물이 자네에게 들어와서 쓰는 것이야”라고 말했고 나는 넋이 나갔다. 사물이 들어와서 쓴다고? 사물이 어떻게 나를 통해서 들어온다는 것일까?

무슨 일인지 3, 4학년이 되면서 소설보다 시를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수업을 같이 듣는 학우들도 어느새 나를 ‘시 쓰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졸업 후 1년 뒤에 등단을 하며 시인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한동안 나는 시인이라는 말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게는 시를 쓰기 위한 편한 마음가짐 같은 게 필요했던 것 같다. 그때 생각난 영화가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이었다. 버스 운전사인 패터슨은 버스를 운행하면서 본 풍경과 일상의 대화를 통해 시를 쓴다. 패터슨이 쓴 시 「Love Poem」은 “우리 집엔 성냥이 많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패터슨은 그 성냥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점점 사물의 신비를 밝혀나간다. 패터슨과 성냥이 주고받았을 대화를 떠올릴 때면 다시금 시론 수업 때 선생님이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시는 누가 쓰지?”

패터슨처럼 나도 회사 생활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시인이라고 불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상태가 마음에 든다. 익숙한 풍경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말차를 마시다가, 양초를 켜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기차를 타다가 시가 될 것이 떠오르곤 한다. 조용히 순간을 바라보던 패터슨처럼 지하철에서 메모를 하고,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을 때 짧은 시를 쓰기도 한다. 혼자 밤에 스탠드를 켜고 책상에 앉아서 시를 쓰려고 할 때면 내가 하루 동안 보고 느낀 사물·풍경 공동체가 내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느낀다. 그때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풍경 공동체가 가까스로 시가 되는 과정’을 돕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년간 다닌 검도 도장에서 검도를 배우면서 관장님께 들은 말이 떠오른다. “검을 검집에 억지로 넣으려고 하지 마세요”, “검이 스스로 검집에 들어오고 나오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검을 자연스럽게 다루려면 너무 힘을 주지 말아야 한다. 검도를 잘하는 사람은 검이 허공에서 스스로 움직이게끔 돕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검을 가졌기에 검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과 함께 움직이는 방식을 익히고 있기에 ‘검도하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검을 대하는 마음이 시를 대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을 주변의 사물·풍경 공동체와 함께 썼다. 나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은 곧 당신과 함께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을 읽으면서 당신이 당신 주변에 숨어있던 사물·풍경 공동체를 떠올리면 좋겠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것이 가장 투명한 사물의 비밀이고, 곧 시이기에.

 

 강우근 프로필 사진 (출처표기 Hamin Kim)

※ 필자의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은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4년 창비에서 출판되었다.

강우근
시인, 1995년생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