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손글씨는 마음이다

  • 글밭단상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손글씨는 마음이다

다시 손글씨가 떠 오른다. 잡지마다 손글씨를 받고 손글씨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문명의 선두라고 할 수 있는 간편한 컴퓨터가 바로 앞에 있지만, 손글씨는 꿈틀거리고 있다.

음악용어로 ‘크레센도’는 점점 크게 연주하라는 말이다. 모든 곳에서 위로를 찾는 오늘의 현대인들은 손글씨에서 특히 위로를 받는다. 손글씨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의 실체이며 핏줄이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는 육필(肉筆)이라고 했다. 필기도구를 사용하지만, 손끝으로 흐르는 온몸의 갈망과 호소가 핏줄로 흘러내리며 글씨가 되는 것이다. 그 흘러내리는 무게가 바로 마음이다. 글씨 한 획에 마음이 실려 손글씨를 받으면 마음으로 읽게 된다. 미루거나 홀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손글씨는 힘이 세다.

시집을 발간해서 시인들에게 보내면 대개의 경우 문자가 온다. 가장 쉬운 방법이다. 모른 척하는 것보다 훨씬 고맙다. 그러나 몇몇은 손글씨 편지를 보낸다. 그 손글씨 편지는 귀하다. 마음을 받은 것이니까. 그래서 그 짧은 손글씨 편지나 엽서는 난 아직도 보관 중이다.

마음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인쇄된 것은 쉽게 버린다. 손글씨는 소중하게 서랍에 눕힌다. 글씨 색이 변한 것도 있지만 볼 때마다 사랑스럽다. 그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 아닌가.

너무 간절하면 손글씨를 써 보라고 나는 후배에게 말한다. “그게 먹힐까요?”라고 묻는다. 남편이나 아들에게, 딸에게 정말 너무 사랑해서 얼굴 바라보며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면, 너무 가까워서 상처를 쉽게 주는 가족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려면 손글씨를 쓰라고, 그리고 조용히 그의 주머니에 넣어 보라고 말한다.

“먹힐까요?” 먹힙니다. 그냥 먹히는 게 아니라 눈물까지 보게 됩니다. 그것이 손글씨의 힘입니다. 그것이 손글씨의 위로며 사랑이며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이니까요. 사랑이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기 중 하나는 본심 은폐다. 할 말을 꾹 누르고 진심은 꿀꺽 삼킨다. 대화를 중단한다. 그리고 마음을 끓인다. 결국 마음이 졸아지고 터지고 화상을 입는다. 마음 병을 앓는 사람 중에 절반 이상이 바로 이 때문에 병을 얻었다.

 

 

불통이 가져오는 불행은 너무 많다. 그때 손글씨보다 더 좋은 치유약은 없다. 손글씨는 진심의 기호다. 그 기호를 움직여 자신의 진심을 보내고, 그 진심의 기호로 서로의 마음 다리를 만들어 오고 가다 보면 그 다리마저 사라지고 서로 눈만 봐도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서체 디자이너는 손글씨를 정신적 지문(指紋)이라고 표현했다. 옳은 이야기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지지고 다지고 떨며 울먹이며 다다르는 과정에서 정신의 지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식당에서 네 식구가 밥이 올 때까지 모두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시인으로 사실 마음 아프다. 그들은 같이 있지만,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손편지를 주고받는 가족이라면 우선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꽃 이름이라도 서로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가 당면한 단절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대산문화재단에서 시작한 손글씨 대회가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다. 10년 동안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불통이 화해로 가는 등불이 켜졌을 것이다. 손글씨 심사를 10년 해 본 결과는 갈수록 커지는 관심이다. 올해는 다양한 행사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손글씨는 마음이다. 사랑이다. 마음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다. 그러나 줄 수는 있는 특품이다. 우리 마음속에 무량하게 쌓여있는 마음을 손글씨로 표현하고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을 만들기로 하자.

 

※ 손글쓰기의 가치를 전파하고 손글쓰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 교보생명이 공동으로 주최해 온 ‘손글쓰기문화확산캠페인’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제10회 교보손글씨대회’와 함께 기념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신달자
시인, 1943년생
시집 『종이』 『북촌』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