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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 선배와의 삼배(三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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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등소평 선배와의 삼배(三杯)

등소평[邓小平, 덩샤오핑] (1904~1997)

중화인민공화국의 3대 최고지도자이자 군사 전력가, 정치인, 외교관, 혁명가이다.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역임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흑묘백묘론을 통한 실용주의 노선을, 정치 분야에서는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정경분리의 정책을 통해 중국 특색 사회주의인 덩샤오핑 이론을 창시했다.

 

 

때 : 2030년대 초반의 어느 날

장소 : 홍콩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한 중국음식점

대담자 : 등소평(이하  으로 간칭) 유중하(이하  유 로 간칭)

 


 

- 두 사람 모두 이미 귀신이 되어 있다.

 

 유  (명함을 꺼내 건네주며) 안녕하십니까? 유중하라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중국현대문학을 가르쳤습니다.

 

 등  나도 자기소개가 필요할까? 나는 명함도 떨어진 지 오래고… 그건 그렇고, 이 집이 사천요리를 잘 한다고. 장소를 여기로 정한 건 무슨 이유인가?

 

 유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선배님으로 호칭해도 될까요?

 

 등  그럴까, 아무래도 내가 이승의 나이로 치면 자네보다 연상일 테고 이곳 저승에 온 것도 선배일 테니까.

 

 유  선배님이 1904년생, 저는 1954년생이니, 50년 차이가 나네요.

 

 등  자네 편한 대로 하게. 그건 그렇고 내가 사천 출신이라는 걸 알고 음식점을 정한 게지.

 

- 그때 음식들이 전반(轉盤, 중국집의 식탁 위 빙글빙글 도는 둥근 유리판을 가리킨다)위에 깔리기 시작. 유가 등의 술잔에 배갈을 따르자 등도 유의 잔에 술을 따른다.

 

 유  사전에 조사를 해보니, 매운 음식을 즐겨 드셨다고 하셔서…

 

 등  사천 출신이니까 당연한 셈이겠지. 모 주석(물론 모택동을 가리킨다)도 매운 걸 즐겼지.

 

 유  중국의 1세대 혁명가 가운데 70%가 매운 음식을 먹는 고장 출신이라면서요.

 

 등  그 말은 모 주석이 소련대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인데 그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구먼. 우리 혁명가들의 출신지가 모 주석의 고향인 호남, 내 고향인 사천, 그리고 귀주성 출신들이지.

 

 유  혁명 음식학쯤 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등  그런가 보이. 이 술이 모태주 아닌가.

 

 유  그렇습니다. 선배가 주총(주은래 총리를 가리킨다)과 미국하고 만난 자리에서 드셨던 술인지라 그걸로 마련했네요, 괜찮으십니까.

 

 등  암, 괜찮다마다.

 

- 두 사람이 함께 잔을 비우고 자기 잔을 상대방에게 건넨다.

 

 유  생전에 백주(白酒)를 즐겨 드셨다고요.

 

 등  점심 반주로 두어 잔. 식후 낮잠에는 반주가 그만이지. 나에 관한 조사를 제법 했구먼. 그건 그렇고, 모태주 주가가 삼성전자 주가를 뛰어넘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보았네만.

 

 유  세계 경제를 다루는 잡지 <포브스>에서도 대서특필한 적이 있죠.

 

 등  나도 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네. 미중관계는 저승의 귀신이 된 나도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지.

 

 유  그렇습니다. 그래서 묻는 말씀입니다만, 앞으로 미중관계는 어떻게 되리라 전망하십니까?

 

 등  중미관계는 글쎄, 시간문제라고 할까.

 

 유  시간문제라뇨? 무슨 말씀인지 좀더 풀어서…

 

- 술잔이 이미 한 순배 돌아가는 중이다.

 

 등  글쎄 모르긴 몰라도, 아마 2049년쯤이면 판가름이 대강 나지 않을까?

 

 유  2049년이라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 되는 해 아닙니까? 시진핑 주석이 “중국몽”을 언급하면서 내비쳤던 해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등  그런데?

 

 유  혹시 중화세기단(中華世紀壇)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등  들어보다마다. 그게 아마 2000년 말에 세워졌지, 아마.

 

 유  2000년 12월 21일 준공되었습니다. 선배가 고인이 되신 지 3년 좀 지나서 완공된 셈이죠.

 

 등  그렇구만. 그런데 그걸 왜 거론하는 거지.

 

 유  시간문제라고 말씀하신 거하고 상관이 있지 않나 싶어서요.

 

 등  (밥을 한 숟가락 삼킬 시간이 지나서) 맞아. 자네 말이. 정말로 상관이 있구만. 근데 중화세기단의 준공은 2000년 12월 21일이지만, 설계연도는 언제 마감인지 아나?

 

 유  1998년일 걸로 아는데요. 그러니까…

 

 등  옳아. 그러니까 설계도 마감이 1998년이니까 그 건축물에 대한 당 차원의 논의는 그보다 이전에 있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중국몽은 50년이나 묵은 발상인 셈이지.

 

- 이때 술이 한 순배 더 돈다.

 

 유  시간문제에서 문제라 하면 결국 중미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때는 유도 앞서 미중관계로 말했다가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어 중미관계로 말한다.)

 

 등  중미관계에 쌓여 있는 현안 아젠다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유  갑자기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들지 말고, 힘을 키워라”라는 발언을 1997년 임종 전에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지 않았습니까?

 

 등  중국이 힘을 갖추기 전까지 미국에 덤벼들지 말라고 하는 말이었지.

 

 유  그런데 지금의 중미관계는 그런 사이가 아니죠.

 

 등  시진핑 주석이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았지. 하지만 그거 역시 시간문제 아니겠나?

 

 유  시간문제라뇨?

 

 등  자네 베이징올림픽 때 미국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에 왔던 건 알고 있겠지?

 

 유  그거야 물론이죠. 그때만 해도 미중관계는 좋았던 때가 아닌가요?

 

 등  좋았지. 이른바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불렀던 시절이었지. 말하자면 중국과 미국이 한몸이었다는 이야기야. 그런데 그게 한몸이었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 그게 무엇 때문이던가?

 

 유  부시가 북경올림픽 구경을 왔을 때 아마도 제 생각에 ‘똥 씹은’ 표정이 아니었을까요?

 

 등  ‘똥 씹은’이라. 그거 표현이 그럴듯하구만.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었다고 보는가?

 

 유  당시 미국은 이른바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미국 내 문제를 생각하면 한가하게 남의 나라 올림픽 구경을 다닐 때가 결코 아니었을 거라고 보는 거지요.

 

 등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다…

 

 유  근데 바로 그 직후인 그해 말 미국 대선이 치러진 거 아닙니까.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었죠. 2009년 1월 초 오바마 정부가 시작되고요.

 

 등  그랬었지. 기억이 나네. 오바마의 슬로건이 “아메리칸 드림”이었다는 건. 근데 그 말은 제법 긴 역사를 가진 말 아닌가.

 

 유  제 추리로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은 바로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 이 말을 중국어 혹은 한자로 나타내면 “미국몽”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중국몽으로 미국몽을 뭐랄까, 일종의 물을 먹이는 효과도 노린 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한다면 나만의 망상은 아니지 않을까 해서 말하는 겁니다.

 

 등  그럴듯해. 말이 안 되지는 않아. 그 무렵 오바마가 내건 슬로건이 아마 “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전환)”였지 아마.

 

 유  미국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린다는 거였죠.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경계하는 태세로 전환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중국과의 밀월관계는 끝나는 것이죠.

 

 등  당시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감당하고 있었지.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은 금융업만 남기고 제조업은 외국으로 보내자는 정책을 펴지 않았나? 그게 바로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지. 그러다가 보니까 미국 내 제조업은 공동화되었고, 미국 내에서 필요로 하는 제조업 상품들은 거개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게 되었지 않은가.

 

 유 그렇습니다. 그래서 막대한 수출적자를 메우는 방안이 엄청난 미국채의 발행으로 이어졌던 거죠. 그리고 미국이 발행한 국채를 중국이 고스란히 사줬던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당시 중국이 미국채의 최대보유국이 되었고 말입니다. 그게 바로 차이메리카였던 거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던 시절이었지.

 

 등  “피봇 투 아시아”를 전후해서 중미 간에 무슨 전략회의인가 이름은 까먹었습니다만, 좌우간 1년에 두 차례인가 열렸죠. 2010년 무렵 미국 국무장관이던 힐러리가 그 회의에서 중국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 번째는 미국 국채 매입액의 증가, 두 번째가 중요한데요, 위안화의 환율 대폭 인상이었던 겁니다.

 

 유  그 회의의 경과는 나도 좀 아는 편이지. 미국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지만, 위안화를 건드리는 건 절대 “노”였지. 일본 꼴이 나는 거거든.

 

 등  혹시 “노(No)”라는 표현을 쓴 게 일본에서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랑)가 쓴 『선전포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경제』가 떠오르는데요. 일본 꼴이라면 플라자 협정을 뜻하는 거겠죠? 자네들 요즘 표현으로 치면 “당근이지”라고 말해도 되겠지. 흐흐흐.

 

- 또다시 순배가 한 차례 더해진다.

 

 유  그런데 중미관계를 얘기하다 보니 옛날 이야기만 하고 있었네요. 지금부터는 현재 이야기도 해보시죠. 결국은 중미 간 과학기술력의 격차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걸 얼마나 좁히느냐, 좁히는 게 아니라 추월하느냐인 거죠. 선배가 생전에 어록에서 남긴 “과학기술은 제일 생산력”이라는 말을 떠올리자는 겁니다. 거기에 더하자면 사회경제 제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 대 독재,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등의 문제도 해결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등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보세, 중국 오랜 역사 속에서 외부의 문명으로부터 받아들이되, 덩치가 제법 커다란 세 가지가 뭐라고 생각하나?

 

 유  (한참 동안 뜸을 들인다. 덩치가 큰 세 가지라는 언급을 되새기기 위함일 것이다) 글쎄요. 첫 번째는 인도 불교일 거고. 두 번째가 공산주의가 아닐까요? 아마도 세 번째는…

 

 등  세 번째는?

 

 유  자본주의! 그러네요. 자본주의네요.

 

 등  (미소를 머금으며) 그렇지. 이들 세 가지는 모두 특색(特色)이 하나 있지.

 

 유  특색이라면, 혹시 선배가 언급하신 바 있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할 때 그 특색인가요?

 

 등  그렇네. 그거와도 통하지.

 

 유  그럼 중국 특색이라는 게 문제가 되네요.

 

 등  중국 특색이라는 건 사실 나 혼자만의 창안은 아닐세.

 

 유  모 주석과 합작품 아닌가요?

 

 등  모 주석의 중국 특색이라고 할 때는 소련과 다르다는 뜻 아니겠나.

 

 유  그렇겠네요. 소련과는 다른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한, 이를테면 소련공산당이 마르크시즘의 정통에 입각해서 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혁명을 추진했다면, 중국에는 당시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농민에게서 그 힘을 발견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등  그것에 따라다니는 게 하나 더 있지. 도시 중심 폭동에서,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는 발상이 바로 그것이지.

 

 유  그러네요.

 

 등  불교도 마찬가지지. 인도 불교를 태국이나 월남에서 받아들였지만, 중국의 경우처럼 인도의 소승불교를 대승불교로 발전시키지는 못하지 않았나.

 

 유  그렇다면 서방의 자본주의도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로 바꿔낸다는 말이네요. 현재의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이 안 가네요.

 

 등  내가 생전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말을 했네만, 유 교수의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힌트 같은 게 생기는 것 같기도 하네. 좌우지간 현재로서는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나로서도 불투명하네. 중국어로 ‘하이부밍바이(還不明白, 아직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뜻)’.

 

 유  칭찬을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틀림없이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상당히 색깔이 다르겠죠.

 

 등  암, 여부가 있나.

 

 유  이 대목에서 문득 일본의 중국 연구자 죽내호(竹內好, 일본어로는 타게우찌 요시미)가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에서 언급한 “마키카에루(卷き返える, 말아서 되돌려주다라는 뜻)”라는 발언이 떠오르네요. 

 

 등  일본인 이름이 뭐라고 했나?

 

 유  중국 사람들은 “주네이하오(竹內好의 중국어 발음)”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저명한 노신 연구자입니다. 내 전공이 실은 노신이거든요.

 

 등  노신 전공이라. 모 주석이 노신의 열렬 팬이었지.

 

 유  모 주석 책상에는 늘 노신 전집이 놓여 있었다지 않습니까?

 

 등  그건 그래. 그건 그렇고, 좀전에 주네이하오라는 일본인이 한 말이 뭐였더라?

 

 유  아, “마키카에루(卷き返える)”를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요. 무슨 말이냐? ‘마키’라는 일본어 단어는 김밥을 만다는 동사 아닙니까? ‘카에루’는 돌려주다는 뜻이겠죠. 그러니까 서방에서 받아들인 것을 서방으로 되돌려 보낼 때, 그걸 김밥을 싸듯이 싸서 변형을 시킨 다음, 서방으로 되돌려주자는 것이 주네이하오가 말하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문제의 핵심이죠.

 

 등  그러니까. 서구식 혹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그걸 김밥 말듯이 말되 싸서 변형시켜서 그걸 다시 서방으로 되돌려준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나? 그게 바로 중국 특색이라는 말과 연결되고 말일세. 그럴듯해. 헌요우이스(很有意思, 재미가 없지 않다는 뜻).

 

 유  중국 특색만이 아니라 어쩌면 동아시아 특색이 아닐까요?

 

 등  그것도 그럴듯해.

 

- 두 사람이 막잔을 목구멍으로 털어 넘기며 이구동성으로 깐베이를 발한다. 이로써 이태백의 시구절 가운데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가 완성된 셈이다.

 

 유  오늘 유쾌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나면 대만 문제, 소수민족 문제 등등 문의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중하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54년생
저서 『이태백이가 술을 마시고야 시를 쓴 이유, 모르지?』 『검은 유혹, 맛의 디아스포라 짜장면』 『살아 있는 김수영』 『영화로 읽는 중국』, 역서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공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