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이야기해 줄게

  • 동화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이야기해 줄게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왔다. 종이 상자는 비에 젖어 있었다. 신발 상자만 한 크기였는데 바닥 면은 흐물거려서 금세 찢어질 것 같았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하얀색 뽁뽁이가 여러 겹 감긴 그 안에 엄마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372일 만에 다시 만났다. 나는 그때 상자도 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디서부터 말하면 좋을까? 흥분하지 않고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숨을 크게 내쉬어야겠다. 눈을 감고서 들이쉬며 하나둘, 내쉬며 하나둘 셋. 나는 최근에 방과 후 수업에서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기가 없어서 신청한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은 듯했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호흡을 느껴보라고 웃으면서 가르쳐주셨다. 그 일은 처음에는 지루했다. 하지만 따라 할수록 내 아랫배에 풍선이 들어있는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 날 나는 5학년 2반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몸이 붕 떠올랐다. 감긴 눈 속에서 순간 이동을 시작하더니 엄마가 있는 집에 내려앉았다. 드디어 말이 많은 나의 수다쟁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나 어제 진짜 이상한 꿈 꿨어” 하며 수다를 시작했다. 재잘재잘 이어지는 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챙겨야 할 준비물이 있다는 말을 건넬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가방을 메고 현관 입구에 서면 엄마는 그제야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정말 말이 많지?”

여기서 대답하면 엄마의 말은 더 길어질 게 뻔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하지만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는 순간 상황은 반복되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공원에 다녀왔는데 못 보던 꽃을 발견했어. 어떻게 생겼냐면……” 엄마는 말하고, 말하고, 또 말했다.

“엄마. 꽃들도 귀찮을 거예요.”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그 마음을 몰라.”

엄마는 길가에 핀 꽃들의 이름을 거의 다 알았고, 반드시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가 밖에서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게 부끄러웠다. 엄마는 처음 만난 사람과 한 시간을 넘게 말할 수 있고, 동시에 세 사람과 대화도 가능했다. 바쁜 이웃도 붙잡고 인사를 건넸고, 옆집 강아지와는 웃으면서 대화를 했다.

“엄마. 말을 많이 하면 힘들지 않아요?”

“나는 말을 안 하면 힘들어.”

엄마는 엷게 웃었다.

아빠는 평소 무뚝뚝해서 누구하고든 대화를 통해선 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아빠를 닮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말이 없는 편이다. 내가 엄마를 피할 수 있는 곳은 화장실뿐이었다.

“고은아!”

금세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는 둘 뿐인데 왜 저렇게 크게 부를까? 나는 화가 나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엄마는 문 앞에서 “얘가 변비인가?” 하고 돌아섰다. 한참 뒤 내가 거실로 나오면 엄마는 빨랫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의 셔츠 소매를 만지면서 회사 일이 힘들까 봐 걱정했다. 내 바지를 반으로 접으면서는 채소를 먹으라고 잔소리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누가 먼저 결혼을 하자고 했을까? 아빠가 키스로 엄마의 입을 그만 막아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면 괜히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지만 나는 물으려다 관뒀다. 당장 숙제도 해야 하고, 보고 싶은 영상도 많았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답장을 보내는 게 먼저였다. 다음에, 하고 미루었다.

 

나는 긴 숨을 내뱉으며 가만히 눈을 떴다. 내 방에 도착한 엄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택배에서 꺼낸 물체를 조심스레 책상에 올려놓았다. 원뿔 모양으로 생긴 기계는 내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설명서에는 ‘AI 엔진을 활용한 음성 복원 기계’라고 적혀 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핏 보기에는 친구들 집에 있는 물건처럼 보였다. 곰 캐릭터나 달걀 모양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말로 명령을 내리면 텔레비전 채널을 바꾸어주거나 날씨 정보 등을 알려주었다. 상자에는 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

 

고은님께.

반갑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고골리 회사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기억과 의식, 음성을 프로그램에 넣기를 바라셨죠. 하지만 이 기술 개발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오래 걸렸습니다. 또한 위험성이 많아 쉽게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중국 등 유럽 국가에서 먼저 성공사례를 발표하자 그제야 우리 회사도 독일 회사와 합작하여 정부의 승인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실험에 참가신청서를 냈죠. 당신의 어머님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뽑힌 분입니다. 어머님의 간절함이 자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어머님은 이 작업을 우리와 함께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그 모든 것은 당신을 향한 사랑입니다.

 

나는 기계에 전원을 연결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스피커의 몸체에 달린 작은 구멍 같은 카메라가 열심히 나를 보았다. 나에게는 푸른빛을 깜박거리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

엄마를 부른 건 오랜만이었다.

“응.”

분명 엄마의 목소리였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솔’ 음에서 나오는 맑고 높은 목소리. 나는 방을 나와 화장실에서 엄마, 하고 다시 불렀다. 저편에서 응, 하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베란다에서도 엄마, 하고 불렀다. 응. 엄마는 계속 대답해 주었다. 나는 침대로 펄쩍 뛰어올랐다. 신이 나서 정신없이 엄마를 불렀다.

“이제 우리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그때 나는 엄마가 죽을 만큼 아팠다는 걸 몰랐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다는 말 대신 할머니 댁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엄마의 병세가 심해져서야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눈에 띄게 야위어갔다. 서서히 말도 잃었다. 웅크리고 누워 있는 엄마의 몸집은 점점 줄어들어서 아예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말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자꾸만 화가 났다. 나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갑자기 음 소거가 된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별은 준비 없이 찾아왔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아빠와 나는 더 조용해졌다. 아빠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나 역시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서 주로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방송을 보았다. 아빠와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했다. “학교 잘 다녀왔니?” “네.” “밥 먹었니?” “네.” “아빠, 저 내일 시험을 봐요.” “그래.” 단답형의 대답으로는 계속 대화가 이어질 수 없었다. 우리는 주로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뭐라고 할까?’

나는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엄마가 웃기 시작했다.

“고은아, 겁을 먹고 놀란 사람처럼 서 있을 네 아빠를 상상해 봐.”

정말 엄마의 웃음소리였다.

그랬다. 엄마는 말을 하다가도 혼자 잘 웃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 떠올랐다. 엄마는 프라이팬에 잘게 썬 고기를 볶는 중이었다. 양파도 넣고 당근도 넣었다. 나무 주걱을 쥔 오른손으로는 냄비를 휘휘 저었다. 동시에 찬장으로 왼손을 뻗어 그릇을 꺼냈다. 엄마는 말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나는 볶음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팔을 괴고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엄마! 나 배고파.”

“그러면 당장 냉장고를 열어야지. 어떤 재료가 있을까? 말만 해. 그러면 엄마가 레시피를 알려주지. 보다시피 난 입은 있지만 손은 없잖아.”

말을 할 때마다 원뿔 모양의 몸체는 붉은빛에서 푸른빛을 냈다. 등고선 지도처럼 보이는 물결무늬의 움직임이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하면서 표정을 만들어냈다. 마치 엄마가 눈웃음 짓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갑자기 많은 말을 하고 싶어졌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양치질은 꼭 3분 동안 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이불 정리부터 해요. 양말은 뒤집어서 세탁기에 돌려요. 달걀부침을 할 때는 약한 불에서 할 줄도 안다고요. 엄마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매일 후회했어요. 엄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시간이 부족했던 거예요. 그래서 말도 사랑도 한꺼번에 많이 주려고 했던 건데. 미안하다고 하려는데 내 입에서는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나 예뻐?”

“미인연구센터가 내놓은 얼굴 평가지표에 따르면 고은이는 좌우 대칭이 완벽하지 않지만 쌍꺼풀 없이 큰 눈매가 매력적이고……”

엄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거였다.

“엄마, 나 낳았을 때 어땠어?”

이제 내 질문도 끝나지 않을 거였다.

“너는 나에게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자신감이었어. 그래서 하루를 더 살았지.”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엄마의 이야기가 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엄마의 수다는 늘 무궁무진해서 이야기의 끝을 알 수 없었다. 이어질 얘기들이 궁금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전앤
소설가, 고양예술고등학교 교사
장편소설 『우리는 마이너스2야』, 저서 『짧은 소설 가이드북-오늘 뭐 읽지?』(공저) 등